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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Apr 25. 2020

매일 퇴사할 것처럼 책상 정리를 하는데

출근은 안 해도 돈은 벌고 싶은 소놀부

홍성 살 때 유명한 한의사 할아버지가 계셨다.

이 할아버지는 궁에서 일을 하시다가 홍성으로 와서 한의원을 차리셨다고 했다. 진맥을 잘 짚어서 전국에서 이 할아버지께 한약을 지으려고 찾아왔다. 어렸던 나는 오빠 한약을 지으러 갈 때 엄마 따라서 가끔씩 가곤 했다. 하지만, 문을 열면 진한 한약 냄새에 숨을 참고 들어갔다가 금방 밖으로 뛰쳐나오곤 했다.


좋은 얘기만 써 드리고 싶은데 할머니가 또 등장하시네


D에서 사시던 할머니는 홍성에 오셔서 한의사 할아버지께 약을 지으러 가셨다. 평소 잠을 잘 못 이룬다는 할머니에게 한의사 할아버지는 큰 소리로 버럭 화를 내셨다.


하늘이 무너질 걱정을 왜 해?


그 소리를 듣고 나는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쳐다봤다. 김좌진 장군 동상 밑에서 새파란 하늘을 쳐다보니 김좌진 장군의 쭉 뻗은 손가락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당시 나는 하늘이 무너질 걱정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기에 정말 겁이 많이 났었다.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할 수도 없이 죽겠구나 싶었다.


홍성에 오셔서도 낮잠을 밤잠처럼 주무시던 할머니는 정작 밤에 잠이 안 온다며 홍성 한약방에서 한약을 한 채 지어 드셨다. 그때 당시 40만 원이 좀 안되던 아빠 월급에서 할머니 한약 비용으로 10만 원이 나갔다. 그날 밤 방 2칸짜리 관사에서 지내면서 엄마 옆에서 잠을 잤던 나는 밤에 잠 못 이루는 사람은 할머니가 아니라 우리 엄마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할머니의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버릇을 내가 물려받았다고 느꼈던 때가 있었다.

나는 걱정이 많았다. 내 걱정대로라면 난 이미 중2 때 이 세상에 없었어야 했다. 말도 안 되는 사고사로 어린 나이에 나는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가지고 살았다.


1년에 2번씩 해외여행을 다니면서도 나는 항상 회사 책상과 내 방 책상 정리를 하고 인천 공항에 갔다. 왠지 이번에는 해외에서 무사히 못 돌아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회사에 입사를 해서도 나는 오래 다니고 싶어도 남들처럼 내쫓길 것만 같았다. 그러다 보니 수시로 책상 정리를 했다. 매달 사용하는 여성 용품도 왠지 다음 달이면 이 회사에서 못 쓸 것 같아서 필요한 만큼만 가져다 뒀다.


내가 보는 거의 모든 서류는 밖으로 유출이 돼서는 안 된다. 1달만 지나도 폐기를 해야 하는 서류가 쌓이기 때문에 나는 수시로 파쇄했다. 닥쳐서 퇴사를 하게 된다면 파쇄하는 것만 해도 며칠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 책상만 놓고 본다면 그 어느 누구도 11년 차 책상이라는 생각을 안 한다. 필기용품은 내 책상 한 곳에 필요한 만큼만 있고, 서랍과 책장에는 그 달에 끝내야 할 서류와 내가 써야 할 개인적인 용품들만 있다. 지난달에는 회사에서 4단 책장을 주문해서 나한테 보냈다. 하지만 이 책장은 아직까지 비어 있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은 많이 줄었다. 회사에서는 내쫓겨서 나가기보다는 내가 먼저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노력을 했는데 안되거나 계획이 틀어지는 것도 내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여기며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돈을 벌 수 있을 때 바짝 돈을 벌어 왔다. 아빠처럼 정년퇴직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언제 돈줄이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장에 차곡차곡 돈이 쌓이는 건 좋지만 월요일 아침이면 항상 금요일만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렇다면 나는 왜 회사를 계속 다니는 걸까? 


막상 회사를 안 다니면 나는 뭘 해야 할지 모른다. 이 나이를 먹도록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고 딱히 내가 잘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 모아 둔 돈으로 뭘 하고 싶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고, 내 장점을 내세워서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아빠처럼 38년을 일하게 될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다. 내 마음속에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래서 10년 넘게 모아둔 돈은 항상 관리를 하고 있다. 월급이 들어올 때마다 엑셀과 공책에 정리를 한다. 총금액은 같지만 내 돈이라서 그런지 컴퓨터와 노트에 따로따로 정리를 해도 귀찮다는 생각은 안 든다. 이렇게 정리를 하다 보면 회사를 다니면서 얻는 장점이 눈에 들어온다. 회사를 다니면 월급 외에 복리후생비로 지급이 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월급의 80%가 매달 엑셀 파일에 더해진다. 재직증명서 한 장으로 적금 통장을 만드는 것도 수월하다. 게다가 한 부서에서 같은 일을 10년 넘게 했지만 아직까지도 여러 국가와 일을 하면서 배우고 깨우치는 게 많다.


이제는 죽는 게 예전만큼 두렵지는 않다. 오히려 지금의 나는 수동적으로 매 달 월급을 타면서 무작정 나이만 먹어가는 것 같아서 그게 가장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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