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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Apr 20. 2020

깨끗한 밥을 먹을 권리

누가 코 닦은 휴지만 아니기를...

나이를 먹으면서 입맛이 늘었다.


평소 좋아하던 음식은 그대로인데 좋아하는 음식이 추가가 됐으니 입맛이 변했다고는 할 수 없고, 입맛이 늘었다고 해야겠다


칼국수나 수제비를 무슨 맛으로 먹나 싶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칼국수집만 찾아다니면서 먹고 있다. 특히 인사동에 맛있는 칼국수집이 많아서 토요일에 스페인어 학원 끝나고 종종 칼국수 먹고 집에 오곤 했다.


외근 나갔다가 사무실 오는 길에 보리밥과 칼국수를 파는 집을 봤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시하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길래 역병을 이길 정도의 굉장한 맛집인가 싶었다. 언제 한번 꼭 가봐야지 벼르고 있다가 지난주에 동료들하고 같이 걸어서 갔다.


칼국수 먹으려고 이렇게까지 걸어서 가야 하나!라는 동료들의 원망을 뒤로 한채 그 집을 찾아갔다. 주차장에 넘쳐나는 차들을 피해서 잠시 대기를 했다가 드디어 식당에 들어갔다. 맨 위에 쓰여 있던 대표 메뉴인 칼국수를 시켰고 칼국수에 보리밥이 나왔다. 밀가루만 먹어서는 오후를 버틸 수 없으니 수육 대자도 시켰다.


보리밥은 정말 맛있었다. 김치랑 열무김치 그리고 참기름하고 고추장만 섞었는데도 맛있어서 한 그릇 더 먹고 싶었다. 보리밥이 이 정도니 수육과 칼국수는 더 기대가 됐다. 잠시 기다리니 펄펄 끓는 큰 대접에 국자 하나를 놓고 3명이 떠서 먹을 수 있게 칼국수가 나왔다. 우리는 이 정도 맛에 이 가격이면 맛집이 될 만하다고 칭찬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절대 비울 수 없을 것 같았던 큰 대접의 밑바닥이 보일 즈음 나는 마지막 국자로 얼마 남지 않은 면발을 건졌다. 그런데 면발 위로 동글동글한 하얀 뭉치가 보였다.


어? 뭐지? 노루 궁둥이 버섯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으로 잡아보니 돌돌 말린 휴지가 두루마리 화장지 풀리듯이 풀어졌다. 다 풀어보니 한 8cm 나 되더라. 그 대접에 같이 칼국수를 먹던 나와 동료 2명은 할 말을 잃었다. 우리는 최대한 침착하게 그리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휴지의 정체에 대해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티슈는 테이블 위에 있던 물티슈나 일반 티슈도 아니었다. 


내 또래의 젊은 사장은 손을 덜덜 떨며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본인의 추측은 퇴식구와 배식구가 함께 있어서 퇴식구 위에 있던 휴지가 우리 음식 위로 떨어졌을 거라고 한다. 


퇴식구와 배식구가 함께 있다니 위생 상태가 개판이네

라는 말을 차마 못 했다......


손님이 절대 휴지를 넣었을 거라고 생각을 안 한다. 하지만 본인은 이 휴지가 어디서 칼국수 안에 들어갔는지 전혀 감이 안 온다고 했다.


이 사장은 입을 열면 열수록 사람을 화나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었다.


급기야 사장은 주방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도 불렀다.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쓰는 휴지가 아닌데?라는 냉랭한 답변만 하고 도망치듯 바로 주방으로 돌아갔다. 사장은 우리가 먹은 칼국수, 보리밥 그리고 수육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정체 모를 휴지가 우러나온 칼국수를 깨끗이 비운 우리는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억울하고 짜증이 나서 식품회사 다니는 친구와 영양사 친구한테까지 연락을 해 봤다. 그런데 식당을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시청 위생과에 연락을 해도 속 시원하게 해결 안 해줄 거라고 한다. 오히려 업체 실명을 넣으면 내가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나?


황당한 얼굴로 그 음식점을 나오면서 아직까지 대기 중인 사람들을 보며 너무 안타까웠다.


소 과장님, 이럴 줄 알았으면 해물파전도 시킬 걸 그랬어요. 어차피 전부 공짜였잖아요...

넌 휴지 우린 국물 먹고 해물 파전이 생각이 나니?

ㅋㅋㅋ그런가요? 우리 그냥 커피나 마시러 가요

그래... 커피 마시고 지금 먹은 거 얼른 내려보내자


몸 생각해서 영양제도 꾸준히 먹고 유기농 올리브 오일에 과일까지 잘 챙겨 먹으면 뭐하나 싶다. 알게 모르게 쓰레기 같은 음식을 지금까지 잔뜩 먹었을 거고 오늘 그 음식점에서만 운 나쁘게 내 눈으로 확인한 것뿐이었을 텐데 말이다. 


뜨거운 육수에 잘 우러났는지 새 것처럼 뽀얀 휴지가 1cm씩 펼쳐지던 모습이 아직도 눈 앞에 생생하다.


노루 궁둥이 버섯인 줄 알고 혼자 몰래 한입에 먹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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