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이 어린이날인데 뭘...
회사에서 5월 4일에 샌드위치 휴가를 사용하라고 한다.
긴 휴가를 통해 개인 각자 충분히 재충전을 하고 오라고 공지가 떴다. 누가 보면 5월 4일은 휴가일수에서 제하지 않고 그냥 쉬라고 하는 줄 알겠다. 아무튼 반강제적으로 4월 30일~5월 5일까지 쉴 수 있게 됐다.
어제 생산팀에서 일하는 15년 차 선임님께 안부 전화가 왔다. 평소 같으면 내가 해외여행 갔었는데 이번에는 계획 없는 거냐?라는 소소한 연락이었다. 정말 매년 이 맘 때쯤이면 유럽이나 중국 아니면 일본에 가 있었어야 했는데 (올해 초 계획은 4월 말에 비엔나에 다시 가 보는 거였다) 역병으로 거의 10년 만에 4월 말과 5월 초에 서울에 있게 됐다.
하지만 이번 휴일은 다르다. 우리 집에 "조카가 없는" 소중한 휴일이니 아침에 눈뜨자마자 매 순간을 감사히 그리고 알차게 보내볼 계획이다. 벌써 5월이라니 시간이 너무 빠르다. 월급날은 항상 더디 오는데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조카의 어린이날 선물을 고민 중이시다. 매일매일 색다른 장난감을 손에 쥐고 있는데 뭘 또 사시려고요?라고 물으면 이건 어린이날 선물이니 의미가 다르다고 하신다.
우리 집 상전인 조카와 오랜 기간 지낸 덕분에 초등학교 졸업 이후 잊고 살았던 어린이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게 됐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께서 내 조카를 본다면 어린이날을 이젠 없애도 되지 않을까 라고 한 번쯤은 재검토를 하시지 않을까?
퇴근하고 조카 손에 들려있는 장난감이나 과자 그리고 몇 벌의 공주 드레스를 보면
엄마가 사달라는 거 이렇게 다 사주는 사람이었나?
라는 생각에 나이를 먹고도 유치하지만 가끔씩 배신감이 든다.
어려서부터 오빠와 나는 너무 달랐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조카의 안 좋은 식습관은 오빠를 닮았다. 밥을 입 안에 물고 돌아다니거나 밥을 물고 텔레비전을 보며 밥이 입 안에서 죽이 될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다. 조카 옆에 엄마가 숟가락을 들고 한없이 기다리는 게 어렸을 적 오빠의 식사 시간을 보는 것 같다. 내가 아는 우리 엄마는 텔레비전을 끄고 밥을 먹도록 회초리를 들었어야 한다. 그런데 자식과 손녀는 또 다른가보다.
그래도 6세 조카는 본인 옷과 본인 아빠 옷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곱게 정리한다. 이 때는 매우 예뻐서 조카 사진을 찍어 주고 싶은데 초상권 침해라고 못 찍게 한다. 강행해서 핸드폰을 들고 찍으려고 하면 성질부리기 때문에 음소거로 몰래 찍어야 한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올려놓은 여행 후기를 보며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서 내일이 기대되는 하루하루를 타국에서 보낼 생각에 설레었었다. 딱 1년 전만 해도 마음의 고향 같은 교토에 갔었는데 말이다. 그땐 1년 후 오늘 내가 조카에 대한 얘기를 브런치에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지금으로부터 1년 후 나는 무슨 생각을 브런치에 풀어놓을까? 내년 이맘때쯤에는 지금보다 더 색다르고 재밌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