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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Apr 18. 2020

아직도 어린이날이 필요할까?

매일매일이 어린이날인데 뭘...

회사에서 5월 4일에 샌드위치 휴가를 사용하라고 한다.


긴 휴가를 통해 개인 각자 충분히 재충전을 하고 오라고 공지가 떴다. 누가 보면 5월 4일은 휴가일수에서 제하지 않고 그냥 쉬라고 하는 줄 알겠다. 아무튼 반강제적으로 4월 30일~5월 5일까지 쉴 수 있게 됐다.


어제 생산팀에서 일하는 15년 차 선임님께 안부 전화가 왔다. 평소 같으면 내가 해외여행 갔었는데 이번에는 계획 없는 거냐?라는 소소한 연락이었다. 정말 매년 이 맘 때쯤이면 유럽이나 중국 아니면 일본에 가 있었어야 했는데 (올해 초 계획은 4월 말에 비엔나에 다시 가 보는 거였다) 역병으로 거의 10년 만에 4월 말과 5월 초에 서울에 있게 됐다.


하지만 이번 휴일은 다르다. 우리 집에 "조카가 없는" 소중한 휴일이니 아침에 눈뜨자마자 매 순간을 감사히 그리고 알차게 보내볼 계획이다. 벌써 5월이라니 시간이 너무 빠르다. 월급날은 항상 더디 오는데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조카의 어린이날 선물을 고민 중이시다. 매일매일 색다른 장난감을 손에 쥐고 있는데 뭘 또 사시려고요?라고 물으면 이건 어린이날 선물이니 의미가 다르다고 하신다.


우리 집 상전인 조카와 오랜 기간 지낸 덕분에 초등학교 졸업 이후 잊고 살았던 어린이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게 됐다. 소파 방정환 선생님께서 내 조카를 본다면 어린이날을 이젠 없애도 되지 않을까 라고 한 번쯤은 재검토를 하시지 않을까?


퇴근하고 조카 손에 들려있는 장난감이나 과자 그리고 몇 벌의 공주 드레스를 보면

엄마가 사달라는 거 이렇게 다 사주는 사람이었나?

라는 생각에 나이를 먹고도 유치하지만 가끔씩 배신감이 든다.


어려서부터 오빠와 나는 너무 달랐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조카의 안 좋은 식습관은 오빠를 닮았다. 밥을 입 안에 물고 돌아다니거나 밥을 물고 텔레비전을 보며 밥이 입 안에서 죽이 될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다. 조카 옆에 엄마가 숟가락을 들고 한없이 기다리는 게 어렸을 적 오빠의 식사 시간을 보는 것 같다. 내가 아는 우리 엄마는 텔레비전을 끄고 밥을 먹도록 회초리를 들었어야 한다. 그런데 자식과 손녀는 또 다른가보다.


그래도 6세 조카는 본인 옷과 본인 아빠 옷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곱게 정리한다. 이 때는 매우 예뻐서 조카 사진을 찍어 주고 싶은데 초상권 침해라고 못 찍게 한다. 강행해서 핸드폰을 들고 찍으려고 하면 성질부리기 때문에 음소거로 몰래 찍어야 한다.

속옷을 개고 나면 리본이 항상 앞에 와야 한다고 한다.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면 바로 와서 본인 빨래는 본인이 갠다
오빠 속옷을 야무지게 갠다. 손톱을 내가 잘라줘서 그런가 손이 더 예쁘다
손놀림이 빨라서 사진이 흔들렸네
내가 본인 사진을 브런치에 올리는 것을 알기라도 한 듯 사진 찍히는 걸 무지하게 싫어한다. 사진 찍지 말라고 아예 엎드려 버렸네. 그 모습도 고모는 찍을 거야


매년 이맘때쯤이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올려놓은 여행 후기를 보며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서 내일이 기대되는 하루하루를 타국에서 보낼 생각에 설레었었다. 딱 1년 전만 해도 마음의 고향 같은 교토에 갔었는데 말이다. 그땐 1년 후 오늘 내가 조카에 대한 얘기를 브런치에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지금으로부터 1년 후 나는 무슨 생각을 브런치에 풀어놓을까? 내년 이맘때쯤에는 지금보다 더 색다르고 재밌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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