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다시 만난 샤갈
서울에 오니 많은 문화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았다.
하지만 문화생활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서울에 올라와서야 깨달았다.
광화문 한복판에 걸려있는 미술 전시회 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렜던 때가 있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나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샤갈 전시회를 보러 갔다. 샤갈 전시회는 한국 최초로 가장 큰 샤갈 그림이 전시가 된다고 해서 큰 기대를 가지고 갔었다. 그때 당시 12,000원이라는 큰돈을 내고 들어갔는데 사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줄 서서 봐야 하는 답답함과 소란스러움에 스트레스 속에서 샤갈 그림을 감상했다. 하지만 샤갈 그림 전시회라면서 샤갈 그림 50%에 이름도 모르는 다른 화가들 그림 50%가 섞여 있었다. 큰 기대를 가지고 갔던 전시회였지만 전시품이 너무 적었다. 그래도 그때 아니면 평생 샤갈 그림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샤갈 그림을 보려면 프랑스 말고 러시아로 가야 한다.
샤갈 그림을 보기 위해서 엄마와 나는 모스크바에서의 하루의 일정을 비워뒀다. 구 소련 시절 핵전쟁을 대비해서 사람들이 모르는 지하철을 따로 만들었다는 괴담까지 돌고 있는 러시아 지하철을 하루에도 5번 이상 씩 탔다. 러시아 지하철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붙어 있고, 대리석으로 깔린 지하철 계단은 매우 고급스럽다. 지하철 벽에는 수많은 고전풍의 그림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붐비는 지하철 역 안에서도 인증샷을 엄청 많이 찍었다.
하지만, 러시아 지하철은 내가 이제까지 돌아다녔던 국가 중에 소매치기를 가장 많이 만났던 곳이었다. 지하철 안에는 고려인들이 많았다. 외모로만 보면 고려인들이 소매치기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현지인 10대~ 중년 아저씨까지 손버릇 좋지 않은 분들이 많았다. 돈은 내가 전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만 조심하면 됐지만 엄마의 경우 핸드백이 거의 매일 열려 있었다. 엄마한테서 가지고 갈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엄마 가방이 열려 있을 때면 기분이 나빴다. 우리를 따라서 지하철을 따라 타는 10대 2명이나 심지어 호텔 가는 길까지 따라오는 녀석들 때문에 매일같이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한 번은 붐비던 지하철 안에서 엄마 가방 안으로 중년 남자의 두꺼운 손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확 질렀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뻘쭘해하며 그 순간 내가 탔던 그 지하철 칸은 조용해졌다. 멕시코나 콜롬비아에서도 현금은 크로스백에 넣어서 다녔는데 러시아에서만큼은 큰 화폐의 돈은 옆구리 안에 넣었다가 땀이 차서 결국엔 가슴속에 넣고 다니곤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다시는 러시아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샤갈이 그립다. 나는 러시아에 다시 간다면 샤갈 그림을 다시 보러 갈 거다. 서울시립미술관의 10배 이상 더 큰 미술관 안에 크고 작은 샤갈 그림이 엄청나게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미술관이 커서 그런지 샤갈 그림 앞에는 아무도 없고, 사진까지 마음껏 찍을 수 있었다.
샤갈 그림의 소재가 된 것은 그의 부인 벨라였다.
그녀의 침묵은 내 것이었고
그녀의 눈동자도 내 것이었다
그녀는 마치 내 어린 시절과 부모님, 내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나를 관통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샤갈이 사랑하는 부인 벨라와 함께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다. 밑에 마을보다 훨씬 더 크게 두 사람을 확대해서 그림을 그린 장면이 인상적이다. 왼쪽 부분에 녹색 소가 깨알같이 등장했다. 그리고 왼쪽 하단 부분에 담벼락에 붙어서 몰래 똥 누는 남자가 재밌다. 실제로 보면 엉덩이까지 다 보인다.
엄마와 둘이 팔짱 끼고 미술관에 있으니 한국 사람들 상대로 패키지여행을 담당하던 가이드가 나보고 러시아에 유학 와서 엄마 모시고 온 거냐고 물었다. 러시아로 모녀 둘이 여행 오기 쉽지 않던데 어떻게 왔냐고 다들 놀라워했다. 영어도 안 통하고, 러시아 알파벳을 착각해서 지하철 역을 지나친 적도 많았다. 정신없는 와중에는 소매치기들이 내 지갑을 노리고 있었지만 미술 작품과 러시아 현지식을 먹으러 조만간 다시 가고 싶다.
그나저나 이 분위기로 9월 30일에 런던에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