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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Sep 29. 2020

운동도 11년 차

필라테스든 헬스든 운동은 가리지 않아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드라마 봐? 거기 나오는 지수가 너랑 되게 닮았어!

너무 과분하네요ㅋㅋㅋㅋㅋ어떤 캐릭터예요?

지수가 딱 너야. 순수하고, 남한테 모진 소리 못하는 그런 사람......

이따가 운동 끝나고 고구마 찌면서 바로 볼게요. 드라마 안 보고 산지 10년이 됐네요


드라마를 보다가 Y를 닮은 배우를 보고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Y는 지금도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식단도 관리를 한다.


나도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는 여자가 헬스를 한다고 하면 회사에 계신 어르신들은 당황스러워하거나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헬스나 한다는 말씀을 면전에 대놓고 하시곤 했다.


그래서 나는 상사들에게 더 이상 헬스를 한다고 얘기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대신 23살 때 여의도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새벽마다 했었던 '핫요가'를 한다고 그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핫요가는 그들에게 여성이 하는 운동으로 수긍이 됐다. 뒤늦게 핫요가를 하는 소사원으로 거짓 소문을 내 보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그들은 여자인 네가 왜 '헬스, 복싱'을 하냐는 얘기를 회식 때마다 안주 삼아서 지겹게 얘기를 꺼냈다. 한 때 그런 개념 없는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여자가 헬스를 한다고 손가락질하거나 놀라워하는 분위기는 전혀 없다.

더욱이 지금 내가 헬스를 한다고 회사에서 '무슨 여자가~'로 시작하는 말을 들을 짬밥도 아니다. 그때 내가 헬스 한다고 놀라워하셨던 몇몇 분들 중 두 분은 허리디스크 수술을 크게 해서 이제는 오랜 시간 앉아서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또 한분은 50이 되어서야 근력을 키우겠다고 PT를 받는다는데 쉽지 않은가 보다. 그분들을 보며 10년 뒤 내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내 몸은 내가 알아서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더욱더 하고 있다.


사실 어렸을 때 엄마도 나를 여성스럽게 키우고 싶어서 운동은 수영을 제외하고는 아예 시키지 않았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검도를 무척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검도 대신 미술학원과 영어학원을 끊어주셨다. 24살에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돈 주고 PT를 하며 정식으로 운동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11년 동안 정말 꾸준히 운동을 해 왔고 이제는 운동이 내 삶의 일부가 됐다.


초여름에 발레 필라테스 39회 수업을 끊은 지 엊그제 같은데 이제 고작 4회가 남았다.

처음에 다양한 동작을 배우고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면서 며칠간 가지고 있던 근육통이 내가 수업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인 것처럼 뿌듯했다. 하지만 20회를 넘어가면서부터는 더 이상 근육통을 느낄 수 없었다. 선생님의 수업 방식에 금방 익숙해져 버렸고 더 이상 새롭지 않았다. 결국 30회 수업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이제 운동을 다른 곳에서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점심시간에 그동안 눈여겨본 다른 필라테스 학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가격은 횟수당 지금보다 13,000원이 더 비싸지만 새 기구가 많고 탈의실이 남녀가 구분되어 있는 게 가장 좋았다. 공간도 꽤나 넓어서 쾌적했고 필라테스 기구뿐만이 아니라 헬스 기구도 있어서 일찍 도착하면 다양한 기구로 몸을 풀 수 있었다. 선생님도 여러 사람이라서 돌아가면서 수업을 받을 수 있다. 2주 전에 퇴근 후 체험 수업을 받고 나는 이 곳에서 운동을 배워보기로 결정했다. 계약서를 쓰고 1주일 뒤 월급날에 계좌이체를 해 주는 조건으로 수업 2회를 서비스로 더 받았다.


원래 내 일정대로라면 지금 나는 템즈강이 보이는 한 호텔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런던에 가지 못해서 취소한 호텔비와 기타 잡비를 필라테스 52회 수강하는데 다 써버렸다. 월급이 통장을 스쳐 지나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라는 것을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필라테스 52회를 계좌 이체하고 나니 딱 내 한 달 생활비가 남았다. 부모님께 추석 때 드릴 용돈으로 빳빳한 새 지폐를 준비해둔 봉투가 잠깐 생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돈은 손대지 않고 대신 이번 한 달 저금은 10만 원만 하기로 했다.


새로운 필라테스 학원은 지금 수업을 하고 있는 건물 바로 뒤편에 있다.

내 돈 주고 내가 선택하는 학원인데 괜히 지금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도 든다. 혹시 현재 필라테스 선생님이 내가 다른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주에 첫 수업하러 갈 때는 괜히 마음이 찝찝했다. 그래도 역시 새로운 곳에서 새 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나니 주말 내내 의자에 앉을 수 없을 정도로 엉덩이와 허벅지에 근육통이 있었다.


어제 두 번째 수업을 하러 갔다. 탈의실에서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있는데 그때 체대 언니 포스를 가진 한 분이 나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옷을 훌렁훌렁 갈이 입고 나갔다. 슬쩍 보기엔 운동을 이미 하고 온 건지 아니면 이제 운동을 하러 온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필라테스 하기 전 몸풀기 운동으로 강사님은 power plate 위에서 스쿼트 80개를 시켰다. 저녁을 안 먹어서 혼미한 건지 아니면 적응되지 않는 진동 위에서 스쿼트를 해서 어지러운 건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70개가 넘어갈 무렵 엉덩이가 무거워서 주저앉으려니까 강사님은 좀 전에 나와 같이 탈의실에 있던 여자분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저분이 14년 정도 일하신 경찰이에요. 여기서 체력 top 3안에 들어요

저분은 운동 안 하셔도 될 거 같은데요?

아니에요. 평소에 스트레스가 많고 항상 긴장상태여서 여기서 운동하고 몸도 많이 풀고 가요. 소리따도 top 3안에 들게 저분 목표로 운동 열심히 하세요. 집에 가셔서도 복근 운동은 매일 하시고요


필라테스를 배우러 왔지만 중간중간 옛 기억을 되살리며 헬스도 하고, 도전정신을 일깨워 주는 강사들도 있다 보니 이 곳으로 운동을 지른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10월에도 열심히 돈 벌어서 또 학원 등록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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