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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Oct 04. 2020

내가 꿈꾸는 집

한강이 보이는 30평대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요

10년 만에 명절을 한국에서 맞이하게 됐다.


명절을 한국에서 보내는 것은 결혼을 한 후에나 있게 될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코로나의 장기전에 처음으로 항공권을 환불받고 한국에서 명절을 보내게 됐다. 의외로 별다른 아쉬움 없이 집에서 푹 쉬고,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고, 그동안 소홀했던 등산을 하면서 연휴를 알차게 보냈다.


오늘은 오랜만에 평소 가지 않았던 북촌과 서촌의 한 골목길에 갔다. 선선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그 모습 그대로의 골목길에 나는 잠시 추억에 잠겼다. 


회사에 다니면서 토요일에는 영어나 스페인어를 공부하러 종로에 있는 학원에 다녔다. 취업을 한 후에 영어 학원에 돌아와 보니 학생 때 가지고 있었던 미래의 불안함은 없었다. 하지만 회사원이 되고 나니 학생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괴로움을 가지고 학원에 돌아왔다. 오후 5시 30분에 수업을 마치고 나면 집에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저녁을 거른 채 책이 들어있는 백팩을 둘러메고 북촌이나 서촌 골목길을 걸었다.


저녁 시간이라 오래된 한옥 안에서 밥 짓는 냄새를 맡고 압력추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 고등학교 때까지 부모님과 같이 살던 생각도 났다. 주말에 학원을 다닌 것은 자기 계발이 최우선의 목적은 아니었다. 무언가에 집중을 하면 회사 스트레스가 좀 덜어지지 않을까 라는 이유가 첫 번째였고, 두 번째로는 얼른 언어를 마스터해서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북촌에 있는 수많은 각양각색의 한옥을 보며 언젠가 오래된 한옥을 수리해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고등학교 때 재밌게 봤던 '옥탑방 고양이'의 실제 옥탑방을 촬영했던 서대문구에 위치한 집도 우연히 발견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퇴근 후에 커피 한잔 내려서 옥탑방에서 남산을 바라보며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한 때 했었다.


아빠가 정년퇴직을 하기 전 시간이 나면 가끔 서울에 올라오셨다.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의 촬영지 너머로 아빠가 대학교 때 하숙 생활을 했던 곳이 있었다. 오랜만에 서울에 오신 아빠한테 내 생활이 얼마나 고단한지를 하소연하고 싶었지만 아빠는 내 말을 거의 듣지 않으셨다. 오히려 수십 번도 더 들었던 본인의 대학시절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겸하면서 지냈던 시절 얘기를 꺼내셨다.


서대문 형무소 근처의 한 친척집에서 아빠는 하숙비 대신 무악재 고개를 넘어 정부중앙청사, 종로 5가, 을지로 4가 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신세계 백화점 2층까지 자전거로 의자 배달을 하셨다. 일을 하고 친척집에서 주무셨다고 들었는데 다시 여쭈어보니 일꾼들이 없으면 집에서 자고 일꾼들이 있을 땐 공장에서 주무셨다고 했다. 무악재 고개를 넘으면 '1원'에 파는 식혜가 있었다고 한다. 아빠의 이야기는 거짓말 같다. 살아오면서 '1원'을 손에 쥐어본 적은 몇 번 없다. 초등학교 때 길에서 누가 버린 1원을 몇 번 주워본 적이 다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활하셨던 아빠의 입장에서는 내가 하는 얘기는 어린애의 투정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내가 대학 때 생활비 걱정 없이 생활한 것과 지금 회사에 다니면서 이 정도 월급 생활을 하는 것에 항상 감사하라고 하셨다. 나보다 훨씬 뛰어난 인재들이 일이 없어서 놀고 있는데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하셨다.


옛 추억을 더듬으며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다고 놀라워하시는 아빠 손을 잡고 내가 앞으로 살고 싶은 집에 대해서 보여 드렸다. 마침 지나가며 보이는 '옥탑방 고양이' 촬영지 같은 집과 한옥을 가리키며 나의 소망을 말씀드렸다. 아빠는 나를 쳐다도 보지 않고 단 한 마디로 본인의 의견을 말씀하셨다.


넌 앞으로 잘 살고 싶은 생각이 아예 없구나?


그때 나는 결혼을 해서 (그땐 결혼을 엄청 빨리 할 줄 알았다) 남들이 이것저것 준비하고 사는 것들을 전부 생략하고 (가방, 그릇, 비싼 침구 등등) 그 돈과 당시 모아둔 적지 않은 돈으로 예쁜 한옥을 사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왠지 그렇게 살면 회사에서의 힘듦도 집에 돌아와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빠는 사대문 안에 위치한 비싼 한옥을 구매하면 안 되는 이유와 그곳에서 살면 안 되는 근거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셨다.


게다가 '옥탑방 고양이'의 촬영지였던 서대문구는 보기에는 허름한 단독주택의 집합소같이 보여도 내 수준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지역이고 곧 개발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소사원이었을 때는 지금보다 더 세상 물정을 모를 때라서 아빠의 말이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옥탑방 고양이' 촬영지 및 기타 주택들이 다 재개발되고 그 자리에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섰다.


서울을 벗어나는 열차나 강남으로 건너가기 위한 지하철 안에서 보이는 한강을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본 적이 참 많았다. 설렘을 안고 어찌어찌 점수에 맞춰서 서울로 대학을 왔는데 막막한 불안함 그리고 취업을 했어도 업무의 버거움 때문에 나는 언제 제대로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런데 요즘은 눈물 젖은 한강을 볼 일이 없다. 오히려 나는 한강이 보이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고 있다. 어렸을 땐 사람들이 왜 이렇게 한강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 한강이 보이는 집에 직접 가서 경치를 보니 정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멋진 곳이었다. 집회 소음이나 내가 좋아하는 대형마트로부터 멀리 떨어진 관광지의 한복판에 위치한 한옥에서 사는 것보다 교통이 편리하고 경치도 좋은 곳에서 사는 게 회사 생활을 좀 더 장기적으로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 같다.


서울에서 그런 집에 사는 게 평생 노력해도 불가능한 일인 줄은 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서울에서 이 정도로 사는 것도 불과 대학생이었을 때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한강뷰가 보이는 내 마음속에 점찍어둔 **구에 사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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