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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Nov 12. 2020

말하기 좋아하는 자와 듣고 싶어 하는 자 사이에서

K군과 Y군 이야기 2탄

경주 정말 좋았어요!! 언제 꼭 가봐요


라는 말을 했을 때 K는 코에 걸린 안경을 검지 손가락으로 쒹 올리며 신발 앞 코로 경주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만 한국사 공부했나......


행시에 한국사 과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K는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 때 경주의 세계사적인 위치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같은 말을 Y에게 했을 때 Y는 나에게 되물었다.


어떤 게 제일 좋으셨어요?


Y는 종종 나에게 말을 이끌어낸다.

내 주위에는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떠들기 좋아하고, 남의 험담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다 보니 들어주는 것에만 익숙해 있던 나는 Y와 함께 있을 때 가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당황스럽다.


11월에도 지하철 안에서 나는 K를 거의 매일 마주쳤다.


Sorita : 운전하고 다닌다면서요?

K : 아...... 그게요......
   차로 출근하는 첫날 사고 났어요......

Sorita : 잉? 도로 연수하면서 회사도 왔다 갔다 했다면서요. 사고 나면 보험료 오른다고 걱정하더니 어쩐대요!

K : 보험료도 보험료지만, 대인사고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대인사고는 답도 없어요

Sorita : 어쩌다가 사고 났어요?

K : 차선 바꾸다가 사다리차를 박았어요. 사람은 안 다쳤는데 수리비가 많이 나왔어요


K는 내가 하는 필라테스 52회를 일시불로 지불한 금액에서 30만 원을 더한 어마어마한 금액을 차 수리비로 날렸다. 본인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이 한순간의 사고로 지출되었던 것이다.


Sorita : 그래도 안 다쳐서 다행이에요

K : 그렇죠. 아 정말 사고 났는데 답이 없더라고요. 앞으로 운전 못할 거 같아요

Sorita : 아니 그래도 앞으로 회사 일로 운전할 일이 많을 텐데요......

K : 그렇죠. 근데 한번 사고 나니까 겁이 나서 못하겠어요. 그냥 운전 안 하려고요!


출근 시간 때 잠깐 이야기를 하는 K지만 점점 이 사람에 대해서 대강 그려지게 된다. 물론 내가 성급하게 한 사람에 대해 판단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K가 회사에 들어온 지 한 달이 됐을 때 첫 만남에서 그는 우리 회사에서 정년까지 버티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K는 우리 회사에 오기 전에 두 번이나 회사를 그만뒀다. 과연 우리 회사는 얼마나 오래 다닐 수 있을까?


K : 참...... 돈 버는 것도 쉽지 않아요. 회사 생활도 정말 답이 없어요

Sorita : 그렇죠. 남의 돈 받아먹는 게 절대 쉽지 않아요. 오히려 혼자 공부할 때가 나았죠?

K : 요즘 공부 다시 하려고 해도 대학원에 자리가 없어요

   

K가 입버릇처럼 말꼬리에 '답이 없다'라고 하는 말이 웃겼다. 이 사람이 시험공부를 너무 오래 하다 보니 인생에서도 답을 찾나 싶었다. 그나저나 대학원을 생각하고 있는 것도 나로서는 의외였다. 만약 내가 8년 넘게 고시원에 있었으면 공부라면 치를 떨 텐데 K는 또 공부를 생각하고 있었다. 'K가 다시 행시를 볼 수도 있을 거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어쩌면 K는 나이 제한에 걸리기 전에 다시 한번 시험장에 들어갈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마어마한 차 수리비에 비하면 K는 너무도 멀쩡했다.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자 K의 안경은 뿌옇게 흐려져서 두 눈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스크를 쓴 채로 빠른 속도로 재잘거리는 입을 보니 어렸을 적에 읽었던 '투명인간'이라는 소설도 생각이 났다. K의 사고 얘기를 듣는데 자꾸 웃음이 터졌다. 남의 불행 얘기를 듣고 웃으면 정말 나쁜 사람이 되는 건데 이상하게 자꾸 웃겼다.


K는 Y의 직업은 체대 애들이 많이 지원하는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Y를 보면 K는 감히 Y의 직업에 대해 그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니다.


Y는 군대에서도 운전병이었고 회사에서도 운전을 많이 하다 보니 운전 실력이 더 많이 늘었다. 얼마 전 홀로 여행을 다녀와서 보다 더 성숙해져서 돌아온 Y는 모르긴 몰라도 다른 직업에 대해서 아직까지 생각은 안 하고 있다. 소란스러운 것을 싫어하고 사람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 Y가 처음 그 직업을 선택했을 때 나는 오히려 Y가 회사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인의 생각과 이상을 말로 떠드는 사람과 말없이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 사이에서 나는 항상 그 둘을 비교하게 된다. K는 모든 것에 '답도 없다'라고 얘기를 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 정답은 본인만이 알고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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