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간방 박씨 Nov 17. 2020

멀고도 가까운 인도 이야기

인도 거래처한테 연말 선물 받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남들보다 빠른 것이 거의 없다.


운전면허도 남들보다 늦게 땄고, 회사 생활에서의 깨달음도 늦어서 동료들보다 더 방황을 했다. 그리고 재테크다운 재테크는 아직 시작도 안 해서 개미처럼 통장 안에 돈을 차곡차곡 모아놓고만 있다. 나와 맞는 친구와 사람을 볼 줄 몰라서 혼자인 적도 많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고, 남들이 많이 다녀본 국내 여행을 이제야 시작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대학교 때 다들 가는 해외여행도  취업 후 25살에서야 태국으로 혼자 벌벌 떨면서 떠났다. 아, 그리고 결혼도 늦는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이미 늦은 것 같아서 시한부 인생을 살듯이 1년에 2~3번 해외여행을 꼬박꼬박 떠났다. 덕분에 남들이 한 번쯤은 가 본 웬만한 국가에 발도장을 찍고 왔다. 하지만 아직 가보지 않아서 미련에 남거나 앞으로도 갈 생각이 전혀 없는 국가가 딱 한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인도다.


인도......

소사원 3년 차 일 때 인도 사람과 처음으로 일을 했다.

인도와 일을 하면서 세상엔 믿을 사람 하나 없고 심지어는 인도 은행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아주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인도 때문에 상사에게 주말에도 항상 전화가 왔다. 상사 역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토요일 아침 8~9시에 내가 종로에 있는 어학원에 가는 동안이나 수업하는 와중에도 항상 전화가 왔다. 한 번도 좋은 기분으로 상사의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진심으로 인도 거래처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날 힘들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원인의 씨앗은 인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거래처는 3자 무역으로 실질적으로 우리 회사에 마진을 거의 남겨 주지 않는 업체였다. 그런데도 목소리가 크고 항상 급발주를 했으며 성질은 더러웠다. 게다가 항상 미수금이 있었고 계약한 날짜보다 몇 달씩 밀렸다. 심지어 인도에 있는 은행에서 한국으로 제 때 돈을 보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주 개판인 국가구나


인생의 낙이 여행이었던 나는 블로그에 가득한 내 또래 여자들의 여행기를 틈나는 대로 즐겨 읽었다. 20대 후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홀로 또는 단짝과 여행을 떠난 에피소드가 참 재밌고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퇴근 시간마다 이런 글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했다. 하지만 유독 인도 여행기에서는 고행길임이 느껴졌다. 인도에서 기차에 올라탔을 때 화장실이 너무 더러워서 8시간 동안 소변을 참다가 방광염에 걸린 여자분의 이야기 (남일이 아닌 게 느껴졌다), 식중독에 걸린 이야기 그리고 정말 위험한 상황에 빠질 뻔한 이야기 등은 나에게 모험심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인도와 몇 년째 꾸준히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국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일하는 인도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참다 참다 내 코 밑에다가 향수를 바르고 다녔다. 그들 특유의 짙은 향수가 두통을 불러일으키고, 함께 밥을 먹을 때면 왕성한 내 식욕을 떨어뜨렸다. 실제로 그들과 함께 보낸 며칠 동안은 몸무게가 2~3kg 빠져 있었다.


비즈니스적으로나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마음을 터놓기도 쉽지 않았다. 그들 특유의 억양에 영어를 알아듣기가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는 인도의 다른 거래처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신입 때 최악의 거래처를 경험했기 때문에 지금 이 정도면 아주 정중하고 일도 빠릿빠릿하게 잘하는 편이다. 게다가 그들 나름대로 ERP 시스템도 갖추고 있어서 답변도 빠르다.


지난주부터 내 메일로 DHL메시지가 거의 매일 왔다.

인도 거래처에서 나에게 물품 하나를 보냈는데 며칠 뒤에 도착한다는 거였다. 한참 바쁜 연말 시즌에 무슨 일거리를 또 보냈나 싶어서 최대한 늦게 왔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빌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퇴근 직전에 내 책상에 DHL에서 온 묵직한 물건이 하나 놓여 있었다.


뾱뾱이로 야무지게도 포장을 해 놔서 가위로 난도질을 해야 겨우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였다. 누군지 몰라도 포장하는 솜씨 하나는 끝내준다고 감탄을 하고 있을 무렵 인도 특유의 짙은 향이 내 코로 확 들어왔다.


포장지를 본 순간 일감은 아니라는 판단에 안심하고 얼른 열어보니 꾹꾹 눌러쓴 손편지가 먼저 보였다. 인도 회사 이름은 손으로 가렸다


튼튼한 종이 상자로 또 포장이 돼 있었다. 인도 회사 이름은 도장으로 또 가렸다. 굉장한 향이 코를 찌르는데 이게 음식이면 대박이구나 싶었다


상자를 여는 순간 사무실을 꽉 메우는 짙은 향이 퍼졌다. 무슨 방향제냐고 물으며 현관문 근처에 앉아있던 막내가 고개를 들 정도였다


모두가 힘든 한 해이니 인도 천연 비누와 손으로 조각한 양초, 얼굴 스크럽 그리고 입욕제를 선물로 보낸다고 상자에 쓰여 있었다. 정말 예상치도 못했던 선물에 진심으로 감동을 했다. 인도는 날씨가 습한지 종이가 비누에 찰싹 달라붙어서 일일이 떼어내야 했다. 그래도 그 마음이 매우 고마워서 인도 거래처 사장님 아들한테 메일을 보냈다. (나와 직접 교신하는 사람이 사장 아들이다)


답장은 30분도 안돼서 왔다. 작은 성의표시이고 내가 꼭 이 제품들을 썼으면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혹시나 모르니 비누는 손을 먼저 닦아보고 그 후에 세안을 해보려고 한다. 그나저나 입욕제를 쓰려면 호캉스를 한번 더 가야 하나 싶다.


인도와 일을 하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다. 주말 아침마다 전화했던 상사도 나름대로 짜증 나고 답답해서 나한테 그랬을 거라고 이해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전부 내 손에서 결정하고 알아서 일을 진행하는 소과장이 됐다. 책임감으로 어깨는 훨씬 더 무겁지만 내가 하는 일과 나 스스로가 내리는 결정에 미심쩍은 부분은 단 하나도 없다. 내가 월급을 받을 수 있게 존재해 주시는 거래처님이 손수 선물을 포장하고 손편지까지 써서 인도에서 한국까지 보내주신 마음이 감사할 따름이다.


가족 단톡방에 선물 인증샷을 올려서 선물을 자랑했다. 아빠는 코로나가 묻어있을 수도 있으니 사무실에 2주 간 격리를 시킨 후 집으로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14일 뒤에 집에서 비누부터 써 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하기 좋아하는 자와 듣고 싶어 하는 자 사이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