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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Nov 28. 2020

나는 스벅 덕후입니다

2021년 스타벅스 다이어리 겟한 후기

19살에 서울에 와서 처음 스타벅스에 가봤다.

고등학교 때도 커피를 잘 마시는 편이었지만 카페에서 마신 커피는 스타벅스가 처음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 3가의 2층짜리 큰 스타벅스 로고 바로 밑에서 사촌 언니는 내 인증샷도 찍어 줬다. 별 특별할 것이 없는 커피맛과 카페 같은데 그 당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커피를 마시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대학생 때 한 손에 커피를 들고 강의실에 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부모님께 100% 생활비를 타서 쓰는데 4천 원짜리 커피 한잔을 테이크 아웃한다는 것이 큰 사치라고 생각했다. 왠지 도덕경에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쓰여 있을 것만 같았고, 율법도 어기는 일인 것 같았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때 내 자취방에는 M사의 믹스커피 한 박스가 있었다.


물론 친구나 언니 그리고 동생들 만나서는 예쁜 카페에 가서 커피나 달달한 스무디를 마셨다. 특히 먼저 서울에 와 있었던 사촌 언니 덕분에 서울에 있는 색다른 카페를 많이 가볼 수 있었다.


24살에 취업을 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돈도 써 본 사람이 잘 쓴다고 커피를 밖에서 매일 사 마시는 돈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6살에 로마의 한 호텔에서 커피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그리고 내가 들고 올 수 있을 만큼의 원두를 로마의 유명한 카페에서 종류별로 사 왔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26년 간 살면서 도움을 받았던 분들께 이탈리아 원두를 선물로 보내드리고 남는 것은 내가 다 먹었다. 그때 큰 맘먹고 전자동 커피 머신도 샀다. 


커피 맛을 알다 보니 스타벅스 커피가 썩 괜찮은 편은 아니라는 것을 개인적으로 느꼈다. 그러나 스타벅스 아이템들은 참 좋아했다. 월급 받아서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사서 사무실에서 사용할 때 소소하게 위안을 받기도 했다. 해외에 나가서는 스타벅스에 꼭 들러서 내가 갔던 도시 이름이 적힌 컵을 사 왔다.


여행지에서 정말 소중하게 들고 온 컵이다. 파리, 런던, 이스탄불, 호주,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다녀왔다. 대만은 출장 다녀온 동료가 선물로 줬다. 대만을 아직 못 가봤다
이건 머그컵이다. 오른쪽부터 페루, 아테네, 멕시코, 시드니, 상하이 그리고 필리핀이다. 안쪽에 더 있는데 꺼내기 귀찮아서 사진 안 찍었다. 나는 친절한 브런치 작가가 아니다
왼쪽에 시안에서 산 닭 컵부터 베트남, 베이징, 태국과 또 다른 스타벅스 컵들이 있다. 장소는 둘 곳이 없어서 신발장 안에 뒀다. 내 집 마련에 성공하면 유리장을 하나 설치해야지


한 동료가 퇴사하기 직전에 태국으로 출장을 가서 태국의 이름 모를 지역의 머그컵을 10개나 사다 줬다. 상자도 벗기지 않았네. 앞에 보고타 컵도 라벨을 아직 안 뗐다


스타벅스 커피를 선호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원두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한국 소비자들의 커피 입맛도 까다로워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예전엔 엄청나게 태우고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원두를 썼다면 요즘은 블론드 원두와 그날의 원두를 선택해서 마실 수 있게 폭을 넓혀 놨다. 그리고 스타벅스에는 우유를 두유로 변경 가능하다는 점도 좋다. 개인적으로 나는 항상 아이스 블론드 두유 라테에 샷을 추가해서 마신다.


지금까지 한 번도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올해는 외근이 너무 많다 보니 오고 가면서 스타벅스에 참 많이 갔다. 스티커 쿠폰도 많이 모이고 친구가 품앗이해 준 덕분에 오늘 2021년 다이어리를 받으러 영하 8도의 날씨에 한 대학교까지 걸어갔다 왔다.


휴가 중입니다...... From now to forever?
매 달 목표를 정해서 살아봐야겠다. to-do-list가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귀여운 계산기도 같이 있고 초등학교 때 들고 다니던 세상 쓸데없는 자도 들어 있었네
안에는 살짝 야박한 쿠폰이 있었다. 쿠폰에 너무 많은 기대를 했나 보다. 실망이 커서 쿠폰 내용은 사진도 찍지 않았다


한 때 스타벅스 덕후로서 집안 곳곳에 물건들이 많지만 산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여행지에 갔을 때 스타벅스 컵을 하나하나 사 모으면서 남들이 느낄 수 없는 나만의 행복감이 있었고, 앞으로도 돈을 벌어야 또 다른 여행지에 가서 남들이 모을 수 없는 컵을 살 수 있다는 '집념'이 회사를 지금까지 다니게 한 큰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해외여행이 언제 정상화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모은 것도 '어쩌면 미래에 작은 자산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나만의 상상도 해본다.


11월의 마지막 주말에 2021년 다이어리를 훑어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그래도 남은 올해 끝까지 코로나 조심하면서 더 재밌고 알차게 잘 보내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새해가 더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해의 내가 완성되어 있을 테니까.


올해는 아파트 단지를 예쁘게 꾸며놓았네.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혼자 설레고 있는데 이 불빛에 자는데 방해가 된다고 민원이 들어온다고 한다. 마음가짐이 이렇게 다들 다른 거구나.


미리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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