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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Apr 22. 2021

날씨 좋은 어느 날, 약수동에서

약수동에 살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빵 사려고...

약수동이 핫한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약수동의 어느 골목길엔 오래된 집들과 달동네 분위기의 쓰러져가는 집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능력만 된다면 약수동에서 살고 싶다.


약수동은 위치상으로도 강남이나 사대문 안으로 넘어가기 아주 좋은 위치에 있다.

그리고 한양도성도 가까이 있다. 무릎이 튼튼한 사람은 급경사를 운동삼아 20분 정도만 올라가면 S호텔을 감싸고 있는 한양도성 둘레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처음 서울 왔을 때부터 약수동을 정말 많이 지나다녔다.

대부분 강남으로 가기 위해 약수에서 3호선으로 지하철 환승을 했지만, 이사를 오고 나서는 버스를 타고 압구정으로 넘어갈 때 약수동을 지나간다. 그런데 올해 '약수동~버티고개' 동네를 눈여겨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미세먼지가 없고 약속이 없는 주말이면 이 쪽으로 산책을 종종 나갔고 이 동네의 매력에 빠졌다.


그래서 오늘은 약수동에 대해 소개해볼까 한다.


약수동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빵집에 들러야 한다.

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도 약수동에 왔다면 두 가지의 빵은 꼭 산 후에 주변을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아침 10시 30분부터 밤식빵과 슈크림 빵을 살 수 있는 것을 모르고 새벽같이 집에서 나와 아침 9시에 빵집에 도착했다. 빵이 없어서 당황스러운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침 9시에 당당하게 카운터에 가서 '밤식빵 하고 슈크림빵 주세요!'라고 말씀드리니 사장님께서는 머뭇거리다가 '10시 30분에 나온다'라고 말씀하셨다. 약수동에 온 목적 중 하나가 두 빵을 사기 위해서인데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까짓 거 1시간 30분만 시간을 때우자고 마음먹었다. 아침도 안 먹고 출발했기 때문에 나는 갓 나온 3,500원짜리 샌드위치를 하나 샀다. 그리고는 근처에 있던 별벅스에 가서 플랫화이트에 샷을 한번 더 추가해서 아침 식사를 했다. 남은 1시간 동안은 약수동 골목길을 샅샅이 구경했다.


약수동 대로변에는 많은 프랜차이즈 가게와 깔끔한 식당이 있었다. 하지만 큰길 뒤편에는 갑자기 공간 이동을 해서 충청도로 넘어왔는지 모를 정도로 '대천, 충청도'와 같은 지명이 들어간 식당들이 보였다. 골목길 사이사이로 최근에 생긴 것 같아 보이는 깔끔한 카페도 몇 군데 찾을 수 있었다. 만약 집에 커피머신이 없었다면 나도 카페를 다니며 소비하는 돈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시 28분쯤 빵집에 도착하니 사장님께서 밤식빵 하고 슈크림빵 나왔다고 건네주셨다.


Sorita : 밤식빵 기다리는 동안 약수동 구경 정말 잘했네요. 예전 약수동 모습이 아닌데요?

사장님 : 여기 엄청 좋아졌어. 약수로 이사와~

Sorita : 지금 이사 오기엔 가격이 너무 올랐을 텐데요 ㅎㅎ

사장님 : 맞아! 많이 올랐어!


서울에 사는 1N 년 동안 눈여겨본 곳이 몇 군데가 있었는데 그중에 한 곳이 약수였다. 하지만 지금같이 집값이 오르기 전, 내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부터 약수동은 내가 살기에 너무 부담스러운 동네였다. 


어쨌든 약수동에서 가장 핫한 빵집에서 갓 나온 밤식빵과 슈크림빵 두 개, 단팥빵 3개 그리고 맘모스 빵 하나를 사서 백팩 안에 넣었다. 가방 안이 빵 열기로 후끈후끈했고 빵 냄새가 등 뒤에서 솔솔 풍겼다.


밤식빵인데 통밤 비율이 훨씬 많다. 슈크림 빵도 안에 슈크림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있다. 슈크림의 높이가 대략 6cm 정도다


빵을 짊어진 채로 약수역 10번 출구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몇 분만 걸어도 슬슬 경사가 시작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 20분쯤 올라가다 보면 벽돌색의 신라호텔이 보이고 한양도성도 눈 앞에 펼쳐진다.


급경사까지 올라가기 쉽지 않지만 다양한 집과 벽화를 구경하며 올라가자. 한양도성 주변에 카페와 소품 가게가 많은데 옛 모습을 살린 모습도 눈에 띈다


아침 11시라 그런지 한양도성 주변은 한산하고 나이 드신 주민들 몇 분이 나와서 햇볕을 쬐고 계셨다.

할아버지 한 분은 북어 몇 뭉치를 들고 망치로 열심히 패고 계시던데 속담으로만 들어보던 것을 실제로 보니 신기하기도 했다.


한양도성을 따라 걸으며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재미가 있다. 도성 곳곳에 옛 기와조각이 아직도 굴러다닌다. 오른쪽은 도성의 시발점일까? 아니면 끝부분일까?


도성 곳곳에 수리한 흔적도 있었다.

도성을 보니 페루 쿠스코에 갔을 때의 재단한 듯 빈틈없던 담장도 기억이 나고, 중국에서 미세먼지를 마시며 걸었던 만리장성도 떠올랐다. 하지만 한국의 도성은 시대별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오래될수록 돌이 크고 점점 위로 올라갈수록 돌이 작아지고 촘촘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글씨 새겨진 돌을 찾는 재미도 있다. 오른쪽 돌은 경주에서도 봤는데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파 놨는지 궁금하다


도성을 따라 걷다 보니 어렸을 적에 한양도성에 얽힌 역사를 만화책으로 읽은 기억도 났다.


한겨울에 한양도성을 쌓기 위해 한양에 살던 거의 모든 남자들이 일터에 동원됐다. 그중에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남자도 있었는데 그 남자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아내도 있었다. 도성을 쌓기 위해 한번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기약이 없었던 그 남자는 반드시 건강하게 돌아오겠다고 아내에게 약속했다. 남자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 어머니와 아내는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릴 때도 맨손으로 도성을 쌓고, 바로 옆에서 일하던 동료가 쓰러져도 슬퍼하거나 쉴 틈이 없었다. 밥은 동그랗게 만들어진 주먹밥뿐이었다. 도성을 얼른 쌓고 집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남자는 일을 하다가 떨어져서 다치게 됐고, 불구가 된 채로 함박눈을 맞으며 본인을 기다리는 어머니와 아내에게로 돌아온다. 세 가족은 살아 돌아온 남자를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어린이를 위한 책이었지만 어렸을 때 이 책을 읽고 내용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책 내용이 다소 과장된 점도 있겠지만 100% 허구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 중 한 곳으로 손꼽히는 한양도성이지만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고 우리 조상들이 고생해서 만들었으니 잘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도성을 만든 사람의 이름일까? 의미는 모르지만 손가락으로 한자를 따라 써 봤다


서울 하늘이 맑은 날은 이제 보기 드문 까닭에 한양도성을 따라 걷다가 내친김에 남산 둘레길까지 와 버렸다.

중간에 동국대학교로 빠져서 3대가 운영하고 있는 빵집에 오랜만에 들어가 봤지만 빵을 하나도 구입하지 않았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동대입구역에 있는 그 빵집이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라는 속담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사장님께서 약수동에 있는 빵집 두 곳에 꼭 방문해 볼 것을 권해드리고 싶다.


70년 역사를 가진 빵 하나를 사기 위해 손님을 앞으로도 꾸준히 맞이하기 위해서는 '가격'이든 '빵맛'이든 '빵 속 내용물'이 다른 곳과 달라야 한다. 솔직히 옛날 빵을 요즘 세대는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부산의 한 빵집도 옛날 빵과 요즘 세대가 선호하는 빵 (호밀빵과 같은 건강빵)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만약 옛날 빵맛에 그때 그 내용물만을 고집하신다면 '가격'도 무조건 그때 당시의 그 가격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약수동에서 산 슈크림빵과 동대입구역에 있는 슈크림빵의 모양은 같다. 하지만, 동대입구역 빵 가격이 몇 백 원 더 비싸지만 무게는 3배 정도 가볍다. 즉, 슈크림 양이 훨씬 적다는 것이다. 옛날 포장지를 벗겨서 그때 그 빵을 먹으면서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고작 내 윗 세대들에게만 한정될 뿐이다. 내가 속한 세대나 다음 세대의 입장에서는 굳이 그곳까지 찾아가서 빵을 사 먹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동대입구역 빵집에서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에 이미 인사동 한가운데에 분점을 냈지만 2~30대의 관심을 끄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아직도 2층에 분점이 운영되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큰길 하나만 건너면 북촌에 분위기 좋고 맛있는 빵과 커피를 파는 베이커리 카페가 정말 많기 때문이다.


날씨 탓일까?

동대입구역에서 기분 내키는 대로 걷다 보니 명동까지 와 버렸다.

오랜만에 명동교자를 지나갔는데 그 시간에 사람이 생각만큼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코시국에 국수 한 그릇 먹다가 역병에 걸릴까 봐 두려운 마음은 있었다. 한 그릇 시켜서 후루룩 마시고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3대째 하는 빵집도 그리고 명동칼국수집도 불경기에 잘 버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2만보 좀 넘게 걸었다


아빠의 다소 박한 월급으로 네 식구가 살았을 당시, 방학 때마다 부모님과 2박 3일로 서울에 놀러 오면 이 칼국수 집에 오곤 했었다. 그때는 1인당 음식 하나씩 못 시켜먹던 때라서 엄마와 나는 항상 한 그릇으로 나눠먹었어야 했다. 물론 만두 같은 것은 시킬 생각도 못했다.


그때 내 나이가 8~10세였는데도 이 식당에 오면 변하지 않은 칼국수 비주얼과 그릇 때문인지 오래전 기억이 난다. 몇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 곳에 와서 내 돈으로 나만을 위한 칼국수를 시켜서 먹을 때면 '이미 성공한 인생인가?'싶은 착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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