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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May 29. 2021

당신의 방은 안녕하신가요?

4권 / 10권 자기만의 방

출근하는 시간은 항상 급하고 시간이 쏜살같이 가는데, 퇴근하는 시간은 너무 느리다.

지하철을 타서 SNS를 전부 다 본 후에 뜨뜻해진 눈을 지그시 감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야만 드디어 환승해야 할 역에 도착한다. 퇴근길 혼잡함의 극을 달리는 시간인 오후 6시 30분에 나는 수많은 사람들 틈 안에 몸을 구겨 넣는다. 사람들은 재주도 좋아서 그 혼잡함 속에서도 각자의 핸드폰으로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그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승한 역으로부터 앞으로 15분은 더 인내하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등, 팔 그리고 어깨의 체온을 평소처럼 나누던 그 순간, 나는 바로 내 앞에 서 있던 한 남자의 손목을 보고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윙?????


뒷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회사원의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와이셔츠를 팔꿈치까지 걷어올린 두툼한 오른쪽 손목에는 5cm 정도 되어 보이는 깊은 상처가 세로로 나 있었다. 그런 상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영화에서 손목에 피가 철철 흐른 채 쓰러져 있는 배우를 봤다면, 지금 나에게 등을 돌리고 서 있는 그 남자의 손목은 이미 상처는 아물었지만, 분명 평생을 함께 가져가야 할 정도의 깊고 뚜렷한 흉터가 남아 있었다.


왼손으로는 핸드폰으로 축구를 보고 있었고 오른손으로는 천장에 달린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른손잡이일 확률이 높을 텐데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그 정도로 긋는 게 가능할까?, 영화에서는 가로로 긋던데?' 등의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다. 살다 보면 '하필 나같이 지나가던 한 여자'가 오해를 할 정도로 손목을 다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자도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우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어두운 지하철 창에 비친 모습으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순간 나는 피곤한 척 두 눈을 꾸욱 감았지만 너무나도 선명한 핑크빛 새살이 세로로 나 있는 5cm의 흉터를 감싸고 있던 장면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몸에 드러난 상처는 눈에 쉽게 보이지만 마음의 상처를 남들이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머니와 의붓언니 그리고 아버지와 오빠까지 죽음으로 떠나보내고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본인의 집 근처 우즈 강에서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 한 여자도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자기만의 방'의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다.


버지니아 울프는 빅토리아 시대 당시의 관행과 가치관을 비판하고 사회 체제를 거부한 상당히 진보적인 여성이었다. 강단 있고 철벽같이 강한 마음가짐으로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 잘 살 것 같았던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자살이라면 작가의 이미지에 타격을 줄 것이라 우려하며 책에서 사실 그대로 적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책 서문에는 비교적 상세하게 그녀의 마지막 행적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책에서는 여성에게도 이제 막 투표권이 생기던 그 시대에 사회적 약자로서 제대로 된 권리를 누리지 못했던 작가를 포함한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약자라는 의미는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인 것 같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한 때 의대를 다니고 있던 한 아들을 가지고 있었던 아버지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하지만 만약 그 아버지가 맞서야 하는 사람이 본인과 동등하지 않다면 상황은 어떻게 될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남겨진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누워 있었지요.
호텔 문조차 보이지 않는 손으로 열리는 듯 보였지요.
침실로 향하는 나를 위해 불을 밝혀 주고자 깨어 있는 이도 없었습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던 거죠.
<자기만의 방>


사회 문제나 남 일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요즘 1달 넘게 풀리지 않는 여러 가지 의혹에 있어서 조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다.


국민의 분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왜 이 사건에 화가 나 있는 것일까?


보통 이런 대중적인 분위기를 분석할 때면, 항상 거기에 뜨거운 기운이 존재했다. 이 열기는 다양한 형상을 취하곤 했다. 풍자로 드러나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감정으로 호기심으로, 비난으로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러나 또 다른 기운인 '분노'도 있다. 분노는 지하로 들어가 다른 온갖 종류의 감정과 한데 섞이곤 했다 <자기만의 방>


분노의 모습은 다양하다.

한 번에 폭발할 수도 있지만 위장한 채 숨어 있는 복잡한 분노는 더 무섭다. 그래서 이런 폭발력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상대방이 대중인 척 오히려 위장을 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답이지, 질문이 아니다.

이번 주에 몇 차례의 공식적인 입장문을 보고 듣다 보니 속 시원하게 답이 풀리기는커녕 의문점이 더 많이 생겼다. 급하게 짜깁기를 하느라 중요한 사건의 시간에 몇 차례나 오타를 내고, 핵심 증거인 CCTV에도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이 사건 말고도 현재 밀려있고, 빨리 해결해야 할 사건들이 너무도 많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하나의 사건 때문에 다른 사건들은 주구장창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이냐?'라고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그것은 일을 맡은 자들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일의 성격은 굉장히 다르지만 나 역시도 다른 사람의 열 손가락을 더 빌려와야 할 정도의 많은 국가들과 매일 일을 하고 있다. 어느 한 국가가 더 중요하다고 특정 거래처의 일을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다. 작은 일이라도 소홀히 했다가 추후에 수습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비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회사에 금전적인 손실까지 끼칠 수 있다. 이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전문직 그리고 비정규직에 종사하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의 업무를 할 때 일의 경중을 가리지 않는다. 이번 사건의 경우, 당연히 그 분야에서 가장 뛰어나신 분들이 사건 해결에 힘을 쏟고 계시겠지만 이런 사건과 관련하여 1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도 답답한 점들이 너무나도 많다. 


권력과 돈과 영향력이 다 그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신문사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 신문사의 편집장이자 부편집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외무장관이고, 크리켓 선수였습니다. 경주마와 요트도 가지고 있었지요. 그는 주주들에게 200퍼센트의 배당금을 지급하는 회사의 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자선단체의 자신이 운영하는 대학교에 수백만 파운드의 기금을 남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여배우를 추락시킨 자였으며, 고기 칼에 붙어 있던 머리카락이 사람의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자였습니다. 살인자를 석방할지 유죄를 선고할지, 교수형에 처할지, 풀어줄지를 결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좌지우지 못하는 것은 안개밖에 없는 듯했습니다. <자기만의 방>


다소 답답한 변명 같아 보이는 입장문을 시간 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이제는 나도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서 지켜보고만 있는 게 맞는 건가'라는 죄책감마저 든다. 시간이 좀 더 걸리는 한이 있어도 무엇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분명히 확인을 하고 넘어가야 한다.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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