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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May 17. 2021

어린이가 없는 어른이 어린이날 보내는 방법

3권 / 10권 행복의 나락

어렸을 때에는 숲이 좋아서 주말이면 북악산과 창경궁에 자주 방문했었다.

나이 먹고 퇴직해서 갈 곳이 없으면 창경궁에 하루 종일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한 때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이 좋다.

어쩌다 보니 일하는 곳도 한강이 매우 가까이 있다. 날씨 좋은 주말이면 운동복을 입고 한강을 따라서 쭉 걷는다. 남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한강에서 보낸다. 지하철을 타고 강북의 거의 끝에서 내려서 강남의 익숙한 어느 지하철역이 나올 때까지 걷는다. 예전보다 한강 산책로가 더 잘 되어 있어서 자전거와 부딪힐 일도 거의 없고, 곳곳에 깨끗한 화장실이 많아서 나에겐 휴식을 취하기 매우 좋은 곳이다.


지난주에는 한강을 보러 지하철을 타고 노량진에 갔다.

노량진은 집에서 쉽게 갈 수 있지만 왠지 잘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이른 아침 1호선을 타고 종로로 놀러 갈 때면 노량진에 공부하러 가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보통 지하철을 타면 귀마개를 하고 핸드폰을 보는데 노량진 수험생들과 나란히 앉으면 SNS에 집중을 못하고 오지랖 넓게 지하철에서도 공부하는 그들을 걱정했다.


그런데 그 걱정을 나만 하는 게 아니었다.

노량진 역에 도착을 하니 열차를 긴급하게 세울 수 있는 버튼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아주 가끔 1호선에 사고가 나서 평소보다 지하철이 늦게 오는 경우 노량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아직도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노량진 역에는 스크린도어가 없다. 또한 노량진 거리의 한 현수막에는 자살상담센터 번호라든지 '괜찮아'라고 적혀있는 단어가 유독 많이 보였다.


코로나 때문인지 노량진 거리도 썰렁했다.

아니다. 나만 노량진에 놀러 온 것이고 수험생들은 지금 학원에서 공부할 수도 있으니 거리가 한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대학생 때 가봤던 노량진 거리의 포장마차나 컵밥이 전부 사라졌다. 그럼 그때 장사하시던 분들은 다들 어디로 가신 건지 또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목적지는 노량진 학원이나 포장마차가 아니라 사육신 공원이었기 때문에 노량진역 2번 출구로 나와서 학원가를 지나 600미터 정도 직진했다. 사육신 공원은 예전부터 꼭 와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와보게 됐다.



사육신묘는 길게 동편에 4개 묘와 서편에 3개 묘로 나뉘어 있다. 원래 묘역에는 박팽년, 성삼문, 유응부, 이개의 묘만 있었으나, 서울시에서 1970년 대 말 사육신묘 정화사업 때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의 가묘도 만들었다.


사육신묘를 둘러보던 중 뜬금없이 흙에 파묻힌 석상을 발견했다! 한 석상은 허리까지 땅속에 묻혀있었고 뒤의 석상은 그나마 발목만 묻혀있었다. 석상이 답답할까봐 흙을 파주고 싶었다


사육신 공원에는 한강이 훤히 보이는 명소가 있다.

그런데 용산과 노량진을 잇는 한강 대교에는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도 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국군은 한강교량을 폭파해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했다. 하지만 당시 다리를 건너던 수많은 피난민들의 희생이 또한 있었다. 그 때 대략 900명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사육신 공원에서 한강공원 방향으로 30분 정도 더 걸으면 노들섬이 보인다.

노들섬에는 내가 좋아하는 노들서가가 있는데 이 곳에서 체온 측정과 QR 체크인을 하고 난 후 안에서 책을 마음껏 보고 구입도 할 수 있다. 내부에 빈티지 스탠드와 높낮이가 다른 책상이 1층과 2층에 있어서 쾌적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행복의 나락'을 골랐다. 책상에 앉으니 창 밖으로 노들섬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이 책의 제목이라니 나는 잠깐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혹시 내가 '나락'이라는 단어의 뜻을 잘못 알고 있나 싶어서 핸드폰으로 검색해봤다.


나락 : 벗어나기 어려운 절망적인 상황


나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위대한 개츠비는 읽다가 말았지만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두 배우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한 장면들 그리고 친구들이 '너 그 영화 봤어?'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살짝 쫓기듯이 봤던 기억이 난다. 위대한 개츠비는 원작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들이 정상적인 삶과 거리가 멀고, 유흥과 방탕함 그리고 배신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더 남는 작품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노들서가에 와서 그의 또 다른 작품 '행복의 나락'을 집어 들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에게 감히 나 따위가 그의 작품이 읽어볼 가치가 있는지의 기회를 한번 더 주는 것이었다.

 

캐롤라인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그녀 주변에는 얼굴들이 가득했다.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 구레나룻을 기른 얼굴, 늙은 얼굴, 젊은 얼굴, 나이를 알 수 없는 얼굴들 틈에 한 여인의 얼굴이 있었다. 군중은 무섭게 늘어나 반대편 보도까지 닿을 정도였다. 그리고 모퉁이에 있는 성 안토니 교회의 회중석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보도를 가득 채우면서 맞은편 백만장자 집의 쇠말뚝 울타리까지 붐비고 있었다. 거리를 따라 질주하던 자동차들이 멈출 수밖에 없었고, 순식간에 군중들 가장자리에 세 대, 다섯 대, 여섯 대가 늘어섰다. 차량들 중에 상부가 무거운 거북이 같은 버스가 그 교통 체증의 일부가 되었다. 승객들은 흥분해서 버스 가장자리로 몰려들어 모여든 사람들의 중심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는 중심부에 누가 있는지 모여든 사람들 가장자리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25살에 서점에서 알바로 일했던 멀린이 65세가 되어 서점 주인이 된 모습을 묘사한 문장
멀린은 여전히 서점에서 매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는 인간이 3천 년 동안 기록한 거의 모든 기록물들을 이름만 들어도 아는 인간 카탈로그이자 폴리오 판 책들과 초판본들의 형압 가공과 제본에 대한 권위자이자 전혀 이해 못 하고 절대 읽지도 않는 책들의 저자 천여 명에 대한 정확한 목록을 지난 자이기도 했다.


남편 제프리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폐허처럼 변해가는 커튼 부인의 집
시간이 지나면서 제프리 커튼의 집에 칠해졌던 새하얀 페인트는 7월의 태양을 숱하게 거치면서 회색빛으로 변한 채 여전히 남아 있었다. 페인트는 부슬부슬 일어났다. 갈라진 오래된 페인트는 큰 덩어리로 조각조각 벗겨져서 기괴한 체조 동작을 연습하는 노인의 모습처럼 뒤쪽으로 휘더니 마침내 아래의 웃자란 잔디로 떨어져서 곰팡이 핀 최후를 맞았다. 앞쪽 기둥에 칠한 페인트에는 죽죽 금이 갔고, 왼쪽 문설주에 달려있던 흰 공은 떨어지고 없었다. 녹색 차양은 짙어지다 못해 색감을 모두 잃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경험하거나 설렘을 느꼈을 장면
'그 말 다시 한번 해줘요'
'무슨 말이요?'
'보고 싶어서 탈이라는 말'
'그래서 탈이죠' 그녀가 고분고분 말해주었다
'보고 싶어서라고 해야죠' 그가 덧붙였다
'보고 싶어서 탈이죠'
'좋아요, 당신이 그 말을 하면 노래처럼 들려요'


소녀의 어렸을 적 모습과 소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 마주한 모습을 묘사한 문장
몇 년이 지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워져서 수도 없는 남자들에게 끝도 없는 비참함을 선사하게 될 테지만, 아직은 어려서 예쁘게 못생긴 그런 작은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불꽃이 느껴졌다. 미소를 지을 때 입꼬리 아래를 삐죽거리는 모습과 열정이 깃든 눈은 사악하기까지 했다. 이런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생기가 넘치는 법이다. 열한 살에도 그 가냘픈 체구에서 은은한 빛이 확연히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여자는 푸른 깅엄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목과 어깨에 흰색 테가 둘러져 있어서 그을린 피부가 돋보였다. 감정이 풍부한 눈과 아래로 쳐진 입을 두드러지게 만들었던 열한 살 때의 마른 체형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뺨의 홍조는 그림에나 나오는 모습처럼 얼굴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달아오른' 홍조가 아니라 흔들리며 타오르는 온기 같은 그런 홍조로, 미묘한 층을 이루고 있어서 언제라도 물러가 사라질 것 같은 색이었다. 이 색과 입술의 움직임이 멈추지 않는 흐름, 강렬한 삶, 열정 넘치는 생기를 계속 떠오르게 했다.


'행복의 나락'은 여러 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단편들은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환상과 환멸의 의미를 세부적인 묘사를 통해 잘 그려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랜 세월 과거의 좋았던 기억을 가지고 살면서 개인이 부풀리고 상상해온 어떤 환상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환멸로 변하는 안타까운 경험도 나타나 있다. 나는 이 작품 역시 위대한 개츠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행복의 나락'에서도 또다른 개츠비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했고, 환상을 좇아보았고, 그 여인이 가져다준 행복과 동시에 그에게 닥친 저주나 허망함을 겪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부를 가지고 싶은 '환상'을 치열하게 좇아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정점까지 오르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실제 하루 만에 몇 십배가 오른 비트코인에 빠져 단기간에 부자가 되겠다는 환상을 좇다가 5천만 원 이상을 잃은 동료 E의 부부를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들은 현재 잃어버린 5천만 원을 메꾸기 위해 또다시 투기를 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제삼자가 보기에 어처구니없는 환상에 빠져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순간 구렁텅이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삶 속에서 환상과 환멸의 변주를 우리의 삶 속에서 잘 이루어내어 추락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린이날에 어린이가 없는 한 어른은 여유롭게 한강을 바라보며 책 한 권을 읽고 하루가 저무는 것이 아쉬워서 한강대교를 건너 용산역을 지나 삼각지역까지 걸어왔다. 용산의 어느 높은 건물을 지나가며 24살에 면접을 보러 이 길을 오고 가던 기억이 났다. 그땐 이런 높은 빌딩에서 일을 해야만 나도 성공한 삶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N 년이 지난 현재는 내가 몸담고 있는 이 곳이 어느덧 내 삶과 적절하게 잘 어우러져서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서울에서의 삶을 가져다주었고, 지금의 현실은 그 어떤 환상보다도 나에게 달콤하게 다가왔다.


한강대교를 건널 때마다 뼈아픈 역사를 잊지 맙시다! 용산역 주변엔 오래된 모텔에 담쟁이덩굴이 있어서 그마저도 멋스러웠다

  

그나저나 내 어린이는 언제 만날 수 있을까?

그걸 알려주는 책이 있다면 당장 읽어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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