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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Jun 16. 2021

오디너리 피플

6권 / 10권 피프티 피플

망원동 방문은 작년에 Y랑 책방 산책하러 간 것이 마지막이었다.

더 더워지기 전에 망원동에 있는 김소영 아나운서의 책방을 다시 둘러보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을 타고 망원동으로 향하는 길에 Y의 동네가 있는 역에서 졸다가 정신이 퍼뜩 들었다. 문득 오늘은 더운 날인데 그가 근무를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어느 장소에 누군가와 처음 간 곳은 그 사람과의 추억이 듬뿍 담겨있다.

그래서 이왕이면 한 장소에 다른 사람을 데리고 다시 오지 않는다. 책방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책을 보기 전에 2층에 올라가 보니 Y랑 같이 차와 쿠키를 먹으며 책 한 권을 읽었던 그 테이블에는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곳에서 책을 읽을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1층으로 내려왔다. 내가 그때 읽었던 김소영 아나운서의 책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Y가 읽었던 공무원에 관한 책은 (책 제목을 까먹었다) 이미 다 팔린 건지 다른 책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책은 낯이 익었다.

우연치고는 너무도 신기하게 1년 전 친구가 엄마께 선물로 보내준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피프티 피플'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올해 읽어야 할 10권의 책 중에 6번째의 책을 별다른 고민 없이 결정하게 됐다.


피프티 피플은 마치 이 곳 브런치 작가의 개성 있는 글 중 다소 독특하고 잘 써진 글만 50가지 뽑아서 책 한 권에 실어둔 것만 같다. 50명의 제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주인공의 삶을 2~3페이지로 공감하거나 엿볼 수 있었다. 마치 Y가 일할 때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가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고작 50명의 사람들도 제각기 개성 있고 살아가는 방식이 여러 가지인데 희한하게도 다수의 우리는 가끔씩 한 마음으로 뭉칠 때가 있다.


끝나지 않을 역병의 창궐로 광화문 광장은 아직까지 조용하다.

코시국 이전에 종각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을 때 광화문 광장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웅장한 노랫소리가 종각에 있는 어느 한 건물의 8층에 있던 내 자리까지 고스란히 다 들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때만 보던 십자가 몇 개가 트럭 위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종교적인 노랫말을 틀어대는데, 가만히 듣다 보면 굉장히 중독성이 있었다. 도돌이표로 무한 반복되는 가사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 시간 넘게 들으면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까지 귓가에 노랫말이 맴돌며 나도 모르게 흥얼거릴 때도 많았다.


그땐 궁금했다.

뙤약볕 아래에서 사방에 경찰버스로 둘러싸인 한정된 공간 안에 모인 이 군중들은 얼마나 도덕적이길래 이렇게 나서는 걸까?


그것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는 별개로 뭐라 특정 지을 수 없는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되는 것 같다. 이것은 신기하게도 비대면 속에서도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한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한 사건과 관련하여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왜 어떤 사건에는 숨진 채 발견된 한 남성의 친구였던 신고자를 포함해 신고자의 친구 2명을 더 긴급 체포하면서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고, 또 다른 사건은 마치 정해진 대본만 읽어주는 것 같은 답답한 느낌이 드는 걸까? 양쪽 사건 모두 친구들은 20대인데 왜 이렇게 다르게 일을 할까?


얼마 전이 소년의 49재였다고 한다.

사실 49재가 정확히 뭘 뜻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49일 동안 신기한 일들이 몇 가지 더 생겼다는 거다. 또 다른 Y들이 한강 공원에 와서 흙을 쑤셔대며 열심히 찾았던 전화기가 뜬금없이 한 사람에 의해 발견이 됐다. 그리고 유독 5월에 비가 많이 내렸다. 마치 한 맺힌 누군가가 한 달 내도록 우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피해자의 기억은 절대 아물지 않는다.

시간이 약이라며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이 흐릿해질 거라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이나 뻔뻔한 가해자들이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될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아온 50년의 인생이 무의미해졌다고 말씀하신 한 아버지의 세계는 이미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지금까지 꼼꼼하게 조사를 해 왔다고 말씀하시며 중간 수사 결과 발표까지 마친 상황에서 이제는 더 어떤 결론을 내려야 소위 누군가가 주장하는 '허위사실'이 잠잠해질까?

 

1) 국민의 의혹을 해소시켜나가는 방향으로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80미터 떨어진 곳에서 장어 잡다가 시원하다 라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수영하려고 들어간 것 같아'라는 사람의 말을 유력한 증거로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국민은 단순히 뉘신지도 모를 개인의 말을 믿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부분을 더 신뢰한다. 누군지 신원도 파악이 안 된 사람의 말로 결론을 내리거나, 과거 블로그의 사진을 보니 소년이 물속에 들어가서 웃고 있었다는 것으로 '이 사람은 수영을 좋아했더라'라고 굉장한 단서를 찾은 것처럼 보고서를 작성해서는 안된다. 그 윗선은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카메라 앞에서 단순히 읽어 내려갔고 다음날 정정된 의사를 또 발표했다. 이런 식의 에피소드가 반복이 되니 사람들이 더 이상 그 조직을 못 믿겠다고 하는 것이다. 한 사건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이 절대 억지를 부리거나 특정한 누군가가 용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우기는 것이 절대 아니다. 국민들이 궁금한 것이 있다면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어떠한 방식을 통해서 이러한 결과를 도출해 냈는지 투명하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사건을 축소시키려 했던 자들도 범인이다.

아주 만약 지금 떠돌고 있는 유언비어처럼 윗선에 누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절대 '꼬리 자르기'를 해서는 안된다. 택시기사님 때린 사건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드디어 결과 발표가 났는데, 고작 나정도 되는 또 다른 소과장만 처벌을 받는 것 같았다. 그 소과장은 정말 윗선에 보고를 하지 않았을까? 만약 보고를 하지 않았다면 밑에 직원이 하는 일을 윗사람이 모르는 것도 정상적인 조직은 아니다.


우리는 불안함을 느낀다.

나 역시 이런 사회 조직 속에서 언제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사건과 사고 속에서 절대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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