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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Sep 05. 2021

다들 잘 지내니?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추석 전 주에는 평소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명절이 지나면 코로나 환자가 폭증할 것 같아서 차라리 미리 만나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먼저 Y랑 약속을 잡은 후 그다음에 부사장님과 날짜와 시간을 잡았다.


Y의 출퇴근 스케줄을 이해하는 것은 아직도 쉽지 않다.

앞으로도 내가 그의 일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도 안 한다. 매주 바뀌는 나의 재택근무 일정도 헷갈려서 회사랑 집에 달력을 하나씩 놓고 스케줄 관리를 하는데, 남의 일정까지 생각하는 건 나에게 너무 무리다.


Y랑은 만나는 시간을 정했는데 몇 시에 만나는지에 따라 날짜가 또 달라졌다.

그렇게 Y의 스케줄에 따라 날짜와 시간을 잡고, 부사장님께 연락을 해서 약속을 또 잡았다. 부사장님과 나는 서로 회사 근처에서 보는 걸 껄끄러워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아주 먼 위치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Y의 나이였을 때,

그때 내 인생은 밑바닥이었다. 그 당시 소사원 3년 차였지만, 일과 사람은 여전히 버거웠다. 부서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1년도 못 채워서 그만두었기 때문에 나는 이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어느 순간 하게 됐고, 그 생각만으로 조금의 위안을 삼았다. 사람들이 그만둘 때마다 본인들처럼 사표를 과감하게 쓰지 않(못하)는 나를 불쌍한 듯이 여겼고, 현재 내가 소속된 이곳에 엄청난 독설을 퍼부은 후 하나둘씩 떠나갔다. 어마어마한 욕들이 1N 년 동안 쌓인 덕분인지 우리 부서는 해외사업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역병 속에서 해외 출장 한번 없이도 잘 살아남고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그때 그 사회 초년생 시절, 부사장님께 (그 당시엔 상무님이셨다) 많은 위로와 응원을 받고 지금까지 버텼다. 소사원이었을 때는 나이가 들면 덜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소대리를 거쳐 소과장이 되어서도 또 다른 고민들이 독버섯처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생겨났다. 부사장님도 회사를 다니면서 분노조절장애와 다른 요인으로 심리치료를 받으셨다.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Y나, 젊은 나이에 승진을 빨리하셨지만 많은 걸 또 내려놔야 했던 부사장님이나 지금의 나는 정말 많은 고비를 잘 넘기고 있다.


올여름, 정말 말 그대로 핫했던 7~8월 동안, 온몸이 녹아서 아스팔트에 딱 붙어 있으면 어쩌나 싶었던 Y는, 그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었다. Y를 보면 한 소년의 성장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작년에 나는 소중한 사람과 가려고 아껴놨던 카페를 Y랑 갔었다. 청와대 가는 길목의 한 부스에서 근무서는 사람까지 보이는 전망 좋은 한옥 카페에서 Y는 자리에 앉자마자 헤어진 여자 친구를 생각하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필리핀 면세점에서 산 경찰견 인형을 손에 쥐어주며 앞으로 걱정과 슬픔은 이 인형에다가 다 주라고 말하자 그제야 그는 싱긋 웃어 보였다. 나 정도 되는 여자를 앞에 두고 이미 끝난 여자를 생각하며 우는 것이 황당해서 뒤통수를 한대 후려갈기려다 참았더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문득 생각을 해 보니, 사회초년생이었던 그가 가장 힘들고 고민이 많았을 텐데 사람마저 떠나니 눈물이 날 수도 있었을 거라 이제야 이해가 좀 된다.


지금의 Y는 '그의 나이 + 100살'을 해야 할 정도의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Y는 초반에는 항상 완벽한 모습을 보이려고 했지만, 요즘은 업무의 고단함이나 몸 상태에 대해서 편하게 얘기를 한다. 이건 지금까지 만나왔던 남자들이 본인의 업무가 고단하다며 찡찡대는 것과 전혀 다르다. 오히려, 너무 잘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기보다는 지금 Y의 모습이 덜 불안해 보이고, 앞으로 더 잘 적응해 나가겠구나 라는 확신이 들게 만든다.


이렇게 서로 사연이 많은 우리는 '그날, 그곳에서, **시에 봅시다'라고 약속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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