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기와집의 정체를 밝혀내다
19년째 종로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는 한 회사원도 그 집에 대해 궁금하다며 써 놓은 글이 있었다. 그 글의 댓글에는 '한 할머니가 그 집 대문을 나서는 것을 누가 보았다고 하더라!'라고 써 놔서 마치 도시 전설 속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나는 공인중개사를 직접 방문해서 그 집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부터 뻔질나게 돌아다니던 종로 거리였지만 부동산을 눈여겨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미리 파란 기와집 근처에 있는 부동산 몇 군데를 찾아봤다. 예전부터 공인중개사의 말은 50%만 믿으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파란 기와집에 대해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정보는 전부 정리한 후 부동산에 방문하기로 계획했다. 그런데 정작 아빠는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는 커녕 내가 공인중개사를 방문한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으로 반응하셨다.
아빠 : 넌 인마! 가 봤자 공인중개사가 상대도 안 해줄 거야!
Sorita : 무시하든 말든 난 이번 기회에 그 집에 대해 알아봐야겠어요
아빠 : 넌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 사기당하기 딱 좋아. 그 집은 최소 50억이야. 지도를 보니까 위치가 대로변에 있고 노른자위 땅이던데 뭘......
아빠가 처음 가셔서 그 집을 봤을 땐 20억 정도 할 거라고 하셨지만 며칠 사이에 아빠의 감정가는 50억으로 2배 이상 뛰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집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전문가의 말을 통해 그 집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겁도 없이 종각역 근처에 있는 부동산 3 곳을 찾아서 1호선을 타고 종각역에서 내렸다.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을 만큼 다녀서 너무도 익숙한 종각의 거리였지만, 한 번도 관심 있게 본 적이 없었던 부동산을 막상 찾으려니 쉽지 않았다. 힘들게 찾은 부동산도 주말이라 그런지 두 곳은 문을 닫았다. 아빠 말씀대로 헛짓거리 하는 건가 싶어서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두 손을 주머니 속에 넣고 마스크 안에서 한숨을 푹 쉬었다. '그냥 북촌으로 놀러나 갈까?'라고 생각을 하던 그 순간 저 멀리 '**부동산'의 간판이 눈에 띄었다.
주상복합 1층에 자리 잡은 부동산 안에는 이미 아저씨 한 분이 공인중개사와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괜히 내가 올 곳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 집 주소를 얘기하자마자 공인중개사가 너한테 택도 없는 곳이라며 꺼지라고 할까 봐 겁도 났다. 한 1~2분 망설이다가 살짝 들어가니 연륜이 있어 보이는 공인중개사 할아버지께서 이 쪽으로 앉으라고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공인중개사 : 자! 뭐가 궁금해서 오셨습니까? 궁금한 것 전부 물어보세요
(아빠의 우려와 달리 할아버지께서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Sorita : 저...... 알고 싶은 집이 있어서 왔어요. 집 주소 불러드리면 되나요?
공인중개사 : 아 그래요? 주소 불러보세요
Sorita : 수송동 **로 *길 **입니다
할아버지는 집 주소를 적다 말고 컴퓨터가 있는 자리로 옮겨서 의자에 파묻히듯 깊숙이 앉더니 나를 쓱 보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 허허, 그 집은 잊을만하면 사람들이 와서 찾는 곳이네요
Sorita : 저 말고도 찾는 사람이 있었나요?
공인중개사 : 아가씨가 지금 열 번째 손님 되시는 분이에요. 아니 근데 그 집은 어떻게 알고 오신 건가요?
Sorita : 예전부터 그 집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곳 집값은 얼마인가요?
공인중개사 : 평당 1억 2천!
우리 집 평당 가격의 무려 3배나 비쌌다......
공인중개사 : 그 집은 사시고 싶어도 못 삽니다. 집주인이 팔 마음이 없어요. 이미 **회사 (대기업)에서도 집주인한테 연락을 했었는데 안 판다고 했고, *** (종교시설)에서는 직접 집주인을 몇 번 찾아갔었어요. 근데도 팔 생각이 없다고 했어요. 그 집은 눈독 들인 사람들이 무척 많아요
파란 기와집의 주인은 현재 외국에 거주하고 있었고, 그 집은 방치되어 있는 것 같아도 한국에 관리인을 두면서 가끔씩 관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공인중개사 : 과거에도 종로 이곳은 서민들이 살 수 없는 곳이었어요.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자리도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살 수 있었던 곳이에요. 이 건물 지을 때 지하 6층에서도 문화재가 쏟아져 나와서 건물 올리는데 애를 엄청 먹었어요
Sorita : 근데 파란 기와집 주인은 왜 집 안 판대요?
공인중개사 : 그건 나도 모르지. 지금 딱 그 집 때문에 ***가 건물을 확장 못하고 있어서 애를 먹고 있단 말이야 허허. 그래서 외국까지 찾아갔는데도 안 판다고 했대요
공인중개사와 짧은 대화를 마치고 걸어 나오는데 1N 년 전 처음 서울에 혼자 올라왔을 때 별로 좋지 않았던 그 기분이 떠올랐다. 이 커다란 서울 바닥에서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고, 과연 이곳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과 고민이 가득했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취업 후 돈 모아서 내가 원하는 곳에 이런 식으로 집을 꾸며서 행복하게 살아봐야지'라고 지금까지 구상해 왔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세상 물정 모르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라도 있었던 그때가 더 나은 건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부동산에서 나와서 걷다 보니 파란 기와집에 도착했다.
아빠가 예상했던 50억을 훌쩍 뛰어넘어 100억이 넘는 이 집은 설령 100억이 있다 해도 살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왔다.
마침 국화 축제를 하고 있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절에 들어가 소원을 빌고 있었다. 나는 무교이지만 교회에 가면 예수님께 기도하고, 성당에 가면 성모 마리아 님께 빌고 그리고 부처님께 가면 또 현재 가지고 있는 고민을 해결해 달라고 엎드려서 절하고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