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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Oct 11. 2021

내가 살고 싶은 그 집 (上)

종로구 수송동 파란 기와집의 정체를 알고 싶습니다

내 나이 19살,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6개월 동안 학교와 영어 학원 그리고 원룸 이외의 곳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서울에 올라오기 전에 지하철 환승하는 법도 배우고, 체크카드에는 엄마가 보내주시는 여유돈도 항시 있었지만, 그땐 2.5평의 작은 원룸에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대단히 즐겼던 듯하다.


그러던 중 대학 1년 여름방학 때 지방에 있던 오빠가 본인이 서울에 가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면서 내 손을 잡고 원룸 밖 세상으로 이끌었다. 그 당시 종로 3가에 즐비했던 포장마차에서 처음으로 떡볶이도 먹어보고, 학원 바로 옆에 있는 인사동도 가봤다. 서울은 생각 이상으로 복잡했지만 재미있고 신기한 볼거리들이 많은 곳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오빠가 집으로 돌아간 이후로도 나는 혼자서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오후에 학원을 마치고 나면 저녁 무렵의 종로 거리를 걸으며 눈으로 많은 풍경을 담았다.


그때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 독특한 집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그중에 한 곳이 딜쿠샤였고, 또 다른 곳이 홍난파 가옥 그리고 마지막 집은 종로구 수송동에 있는 한 양옥집이었다.


딜쿠샤를 처음 봤을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입주해 있었고, 건물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다소 공포스러웠기 때문에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궁금함이 더 앞섰다.


홍난파 가옥은 작은 언덕에 그림 같은 집이 살포시 얹혀 있는 듯한 느낌의 아기자기한 서양식 집이다. 멀리서 봐도 붉은색 벽돌 벽체에 기와가 보일 정도로 눈에 띈다. 이곳에 들어가 보고 싶어서 몇 번을 왔다가 운이 좋게 홍난파 후손을 만나서 딱 한번 집안을 구경했던 적이 있었다. 1층이라 생각했던 곳은 반지하였고, 2층이라 생각했던 곳이 1층인 아주 독특한 집이었다. 집 내부에 홍난파 선생님 작품과 소중한 기록들이 가득 있었는데 후손분이 외국에 거주를 하셔서 (그때 기억으로는 하와이인가 미국에 거주를 하고 계셨다)  집을 자주 비우는 것 같았다. 빈집이 너무 아깝고 내가 이 집에서 살고 싶어서 몹시 탐이 났다. 퇴근해서 이 집에 들어와 창문을 양쪽으로 활짝 열고 바람을 맞으며 따끈한 차 한잔을 하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상상도 했었다. 하지만, 이 집은 이미 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어서 내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집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찜한 집은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해 있다.

(주소를 다 적을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외우고 있고, 사진도 정말 많이 찍어 왔지만 여기다가 함부로 적어도 될지 몰라서 정보 공개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빈집으로 방치되어 있는 이곳은 위치상으로 1호선과 3호선 사이에 있고, 큰 길가에 위치해 있지만 다른 빌딩에 가려서 살짝 숨겨진 위치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 1930~50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집은 대지 297.5㎡고 2층 집에 다락방 1개가 있는 아주 멋스러운 집이다. 외관은 일본식으로 지어졌고 수많은 유리창은 처음 딜쿠샤에서 봤던 얇은 유리로 되어 있으며, 집 안에 커튼까지 그대로 있다. 마당에는 수풀이 우거져 있고, 온갖 쓰레기가 수풀 위에 버려져 있다. 마당 안쪽으로 장독대가 있고, 건물 옆부분에 에어컨 실외기가 나와 있는 것으로 봐서 2018년까지는 (모델명을 보고 추정)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도 추측한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 정도 되는 집이 방치되어 있을까?


그 후로 친구들 손을 잡고 와서 '내가 앞으로 돈 벌면 사고 싶은 집이야!'라고 소개를 시켜주곤 했었다. 그때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진짜 어른이 되면 내가 사고 싶은 것은 과감히 살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서울에 살고 있지만 서울의 집값이 그 당시 얼마인지 (다행히 그때는 집값이 쌌고 아파트 공급이 넘쳐났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면 월급은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조차 없을 때였다. 그냥 월급을 차곡차곡 모으면 언젠가는 원하는 것을 다 살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하고, 내 마음속에는 항상 '종로구 수송동'의 파란 기와집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 여성전용원룸에 모르는 성인 남자들이 더 많이 들락거렸던 치안이 취약했던 곳에서 벗어나 드디어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됐다. 난생처음 고층 아파트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집이란 '개인의 삶의 영역이자 가장 신성하고 사적인 장소'이며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됐다. 아파트에서 살다 보니 북촌의 한옥은 상대적으로 위험해 보였고, 담이 조금이라도 낮으면 해외여행을 갈 경우 집에 아무 일도 없는지 불안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나는 아파트가 최고인 줄로만 알고 살았는데 요즘 들어 다시 '종로구 수송동'의 집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졌다.


긴 연휴 동안 오랜만에 아빠 손을 잡고 종각을 구경시켜드리겠다는 핑계를 대고 아빠께 나의 집을 소개해 드리고 싶었다. 아빠는 본인의 대학 시절 지나다녔던 종로의 길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고 신기해하시며 내 뒤를 천천히 따라오셨다. 나는 아빠랑 발을 맞추어 걸으며 내 마음속 얘기를 털어놓았다.


Sorita : 아빠! 나 사실 처음 서울 왔을 때부터 가지고 싶었던 집이 있어요

아빠 : 넌 인마! 이미 부자가 될 마인드가 아니야. 새 집을 살 생각을 해야지 헌 집 사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이렇게 말씀하셨던 아빠의 눈앞에 파란 기와가 보이고, 담 너머로 2층짜리 일본식 집이 눈에 들어오자 아빠는 '와! 이 집 정말 멋있다!'라고 환호성을 지르셨다.


Sorita : 나 이 집에서 살고 싶어요. 집 내부는 그때 당시 느낌을 그대로 살려서 바닥은 두꺼운 유리를 깔고, 유리창도 그대로 두는 방향으로 해서 외풍을 막을 거예요.

아빠 : 이 큰 집을 혼자 감당하기엔 부담이고, 1층엔 월세를 주던가 해야지! 일단 인테리어 비용만 최소 1억은 넘겠다.

Sorita : 이 집 가격 알아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아빠 : 집 주소를 네가 아니까 그 주소를 가지고 공인중개사 찾아가야지.

Sorita : 이 집은 얼마나 할까요?

아빠 : 기본 20억은 넘을 텐데...... 너만 눈독 들인 집이 아닐 거야. 정부에서도 왔다 갔을 거고.

Sorita : 집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 가격이 확 낮아지지 않나요? 뭐...... 집에서 목 메달았다거나 하는 거요......

아빠 : 글쎄, 이곳은 뭐...... 서울에서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니까 여기서 집단 살인이 일어났어도 집값에는 영향이 없을 거야 


이렇게 나는 처음 서울에 올라온 후로 1N 년 동안 짝사랑해왔던 나만의 집을 부모님께 소개해 드렸고, 그 집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해 종로에 있는 공인중개사를 방문하기로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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