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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Oct 29. 2021

세입자 이야기 (上)

올해 첫 선 본 이야기는 덤

올해 설 연휴에 Y와 가기로 했던 스위스 레스토랑이 문을 열지 않아서 퓨전식 중국요리로 대신한 후로도 내 머릿속에서 스위스 레스토랑이 떠나지 않았다.


스위스에 갈 수 없다면 스위스 레스토랑이라도 (brunch.co.kr)


다른 친구랑 약속을 잡아서 가볼까 싶다가도 Y가 맛집이라고 소개해 준 곳이니까 Y를 데려가야 한다는 일종의 도덕적인 의무 속에서 갈등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스위스 레스토랑을 예약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그건 바로 우리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와 살고 있던 신혼부부가 나에게 남자를 소개해 준 것이다.


3년 전 부모님은 집을 하루빨리 팔기를 바라셨다. 집 근처에는 초, 중, 고 그리고 명문 사학의 한 대학교까지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많은 사람들이 집을 보러 찾아왔었다. 하지만 다들 집값이 떨어질 거라고 우기며 가격 불만만 얘기한 채 돌아갔다.


그런데 예정에 없이 저녁 식사 시간에 공인중개사와 함께 한 신혼부부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들이 우리 집에 왔을 때 나는 이제 막 퇴근해서 화장실에서 발을 씻고 있었다. 발가락 사이사이를 손가락을 넣어서 뽀독뽀독 씻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니 한 남자가 화장실 문 밖에서 내가 발을 씻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당시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만 평소 집에 왔을 때처럼 허리를 숙여서 발을 씻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까지 내 모습을 봤는지는 모르겠다. 그 신혼부부가 떠나고 나서 나는 엄마한테 전부 일렀다. 하지만, 엄마는 '남자의 직업이 지구 밖에 있는 금성에 다니며 연봉이 8천만 원이 넘는 연구원이다. 너도 어디 가서 이런 신랑감 좀 데리고 와라.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니 정말 과묵하고 점잖은 사람이다. 임신한 새댁이 부러워 죽겠다'며 오히려 나를 못살게 굴었다. 게다가 내가 생사람을 잡는 거라며 괜한 착각하지 말고 앞으로 밖에서 사람이 오면 문을 잘 닫고 발을 씻으라며 오히려 나를 나무라셨다.


어렸을 때부터 여자가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나 스스로도 잠깐 반성은 했다.

하지만, 남자들이 화장실 문을 활짝 열고 소변을 보고 있다고 해서 내가 뒤에서 죽치고 서서 구경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실제로 회사 꼭대기층 임원 화장실에서 대부분의 남성분들이 화장실 문을 활짝 열고 볼일을 봤다. 여직원들은 다들 고개를 피해서 다니는 것이 당연한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마케팅으로 입사한 언니가 퇴사하면서 외부 기관에 이 불편한 상황신고했다. 그 후로 꼭대기층의 임원 화장실 문이 다시는 열리는 일이 없었다.)


엄마는 나와 동갑인 만삭이었던 임산부가 마음에 걸리셨던 것 같다.

그 후로 다시 한번 그들이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 여자의 팔짱을 끼고 **금액으로 맞춰줄 테니까 전세로 들어오지 말고 이 집을 사라고 권하셨다. **금액은 우리 아파트보다 교통편이 불편하고 학군이 좋지 않으며 지어진지 10년이 된 동일한 평수의 아파트 매매가였다. 그런데 그 여자는 '어머니! 저희 돈 없어요. 전세로 살 건데 좀 싸게 해 주세요'라고 애교를 떨며 오히려 엄마에게 안기듯이 팔짱을 끼었다. 홈쇼핑에서 일을 하고 있다던 여자는 돈이 없다고 우기는 것 치고는 차림새가 대단했다. 여자가 들고 있는 가방과 가볍게 걸친 코트 그리고 신발 가격만 해도 소형차 한 대 값이었다. 항상 인심 좋은 표정을 하고 있지만 눈썰미는 대단하신 우리 엄마 역시 두 사람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부부가 가고 나서 '씀씀이는 우리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데 왜 지금까지 집이 없고, 집도 구입할 생각이 없을까?'라는 의문을 가지셨다. 집값은 비정상적으로 올려놓고도 1가구 2 주택자에게는 세금폭탄을 맞을 각오를 하라던 무능한 정부의 정책에 걱정이 많았던 아빠도 집을 빨리 팔고 속 편하게 살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공인중개사나 부모님의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라는 진심 어린 조언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집 구경을 하러 와서는 그냥 발길을 돌렸고 결국 우리 집에 그 부부가 세입자로 들어오게 되었다.


엄마는 부부가 사는데 불편하거나 집수리를 해야 할 것을 먼저 찾아서 해결해 주셨다.

다행히 세입자도 2년 간 살면서 우리에게 전화를 한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그동안 나 혼자 아파트에 살면서 집이 더러워질 일도 없었다) 엄마는 부부의 출산일이 다가오자 좋은 음식 챙겨 먹으라고 돈을 보내 주셨고,  몇 개월 뒤 딸을 낳은 것을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보시고 우리 집에서 새 생명이 탄생한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며 세입자에게 축하금도 보내 주셨다. 그렇게 나의 부모님은 나도 얼른 새댁처럼 나보다 돈을 더  버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낳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셨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2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집값을 잡겠다던 정부가 손을 대면 댈수록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2년 사이에 엄마가 **금액으로 사라고 했던 우리 집은 이제 그 금액으로는 동일한 평수로 서울에서 전세를 얻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부동산에 집을 내놓은 후 부모님은 세입자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둘은 맞벌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인의 집에 가서 함께 살 예정이라고 했다. 엄마는 지금 이 집에 살다가 건축된 지 20년도 넘은 **아파트에 가서 다섯 식구가 살면 영 불편할 텐데 안됐다며 남의 걱정을 매일 하셨다. 그런데 나는 그 부부는 '이상한 나라의 세입자'라고 생각한다. 남자 연봉이 8천이라면 여자가 받는 월급으로 생활비를 쓰고 (매 달 한 사람의 월급을 다 쓰지도 못할 거다. 내 기준으로는?) 8천만 원을 매년 잘 모아뒀다면 서울이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 집을 샀을 텐데 그 많은 돈은 어디로 증발한 것인지 궁금했다.


세입자는 떠나기 전 부모님께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평소 세입자를 만날 때마다 나에게 좋은 남자를 소개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던 것이 마음에 걸렸던 건지 나에게 남자를 소개해 주겠다고 연락을 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2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도 아직까지 세입자를 생각하면 그때 그의 안경 너머로 나를 보던 눈동자가 잊히지가 않았다. 나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집에 오랫동안 주차된 똥차를 치우고 싶어 하시는 아빠의 성화에 떠밀려 세입자가 소개해 준 한 남자를 만나기로 했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짤막한 본인 소개를 하던 그 메시지는 바로 나와 만나기로 했던 그 남자였다. 그는 내가 편한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면 그때 보자고 제안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 가고 싶었던 식당도 골라서 알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스위스 레스토랑에 예약을 하게 되었고, 부처님 오신 날을 며칠 앞두고 올해 첫 선을 보게 되었다.


송아지고기와 으깬 감자를 소스에 찍어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레몬이 들어간 뱅쇼가 고기의 느끼함도 살짝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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