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2차 접종까지 마친 후 기운 내서 바람 쐬러 간 이야기
10월 말에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쳤다.
백신을 맞고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의 뉴스를 들으며 이게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겁을 많이 먹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백신을 예약했고, 그 날짜에 내 왼팔을 누군가에게 내밀고 결과는 운명에 맡기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보니 백신 1차를 맞기 전까지 카운트다운을 세면서 매일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살았다.
추석 연휴 동안에도 집 근처 작은 병원에 잔여 백신이 있으니 원하는 아무 날짜에 모더나를 예약하라는 문자가 매일같이 왔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냉장 상태로 백신 보관이 좀 더 철저할 것 같고, 화이자와 모더나 단어를 헷갈려하지 않을 좀 더 숙련된 간호사가 있는 집 근처 대학병원에 가서 일정대로 주사를 맞았다.
1차는 가볍게 지나갔다. (1차만 맞고도 항체가 형성되는지 궁금해서 2주 뒤 검사를 해 봤는데 약하긴 하지만 양성 표시가 나타났다)
그리고 4주 뒤 2차를 맞고 3일 동안 지금까지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고통을 겪었다.
주사 맞고 3일 때까지 가슴을 꽉 조이는 속옷을 24시간 착용하는 것처럼 답답하고 숨이 차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엄청난 피로함에 어린이처럼 10시에 잠을 잤다. 이 정도로 숨이 차고 피로해서는 남은 인생 동안 유산소 운동은 다시 못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다행히 4일째 되는 날부터는 평소와 다름없는 컨디션을 회복했다.
궁금했다.
정말 호흡이 제대로 돌아온 건지 회사 출퇴근하면서 맥박을 재 봤지만 정상이었다. 나는 그 주 일요일에 인왕산 둘레길을 걸으며 몸 상태를 한번 더 확인해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인왕산을 올라가면서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그들을 피해서 혼자 샛길로 빠져나왔다. 인왕산은 대학 때부터 혼자 산행했던 곳이라 길을 매우 잘 안다고 생각했다. 샛길을 혼자 씩씩하게 걸으며 마스크도 벗고 대자연을 만끽하는 그 순간 뜬금없이 산에서 신발을 발견했다!
Sorita : 인왕산 왔는데 샛길에서 신발 두 짝 발견했어
Sorita : (사진)
Y : 헉, 뭐지??
Y : 제가 알아볼게요
Sorita : 뭘? 신발 주인을?
Y : 아뇨, 우리 갈 식당요
사진으로 신발을 다시 보니 하루 이틀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예상치 않게 낡고 닳을 대로 닳은 신발을 본 후로 마음이 찜찜해져서 나는 산행을 멈추고 돈의문 박물관 쪽으로 내려왔다.
돈의문 박물관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한양도성이 있어서 도성 따라 걷는 재미가 있다.
매듭짓기, 도자기 만들기 등등 돈을 내고 체험을 해 볼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이 길을 걸으니 이상한 신발을 본 기억도 다 잊혔다. 정동길에는 오래된 건물과 건물터가 많다. 파란 기와집 다음으로 눈에 밟히는 붉은 벽돌 건물들도 참 좋다.
그런데 이 건물은 민간 건물인데도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사용했으니 정동길에 왔다면 이 건물은 꼭 구경하고 지나가야 한다.
백신 2차 접종까지 끝나서 오랜만에 카페에 들어와 마스크를 벗고 커피를 마셨지만 그래도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입 마시고 마스크 착용하기를 반복하다가 급기야 원샷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별다방에서 벌써 크리스마스 음료가 나온 것을 보니 올해도 정말 다 갔구나 싶은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크다. 하지만 백신 맞고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회복력이 빠른 편에 속한 것 같아 건강하게 낳아주신 엄마를 포함하여 모든 것에 감사하다. 오늘 하루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순간인데 내년이 오기 전까지 2021년을 좀 더 알차게 마무리하고, 회사나 사람에 있어서 더 내려놓음으로써 쓸데없이 걱정하고 스트레스받는 일에 시간낭비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