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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Jul 31. 2022

호구

8월에는 더 힘내자


용기는 더없이 뛰어난 살해자다.
공격적인 용기는.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
이렇게 말함으로써 용기는 죽음까지 죽여 없애준다.
이 같은 말속에는 많은 진군의 나팔소리가 들어 있다.
귀 있는 자.
들을지어다.
<이태원 클라쓰>


왜 내가 그를 마주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기 매우 좋은 자리였다. 누가 지금도 그의 돈을 받고 있고,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진짜 밀정인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그는 혼자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식솔들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외치던 그 3명을 함께 데리고 나타났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그의 식솔들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니 그들은 몇 개월 사이에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쉽게 일하면서 큰돈을 벌다가 갑자기 돈줄이 끊기니 마음고생이라도 한 것일까? 그렇게 쉽게 돈을 평생 벌 거라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을까?


또다시 큰 원탁 책상에 둘러앉아서 조용히 이 상황을 지켜봤다.

나는 말 한마디 꺼내지 않고 J전무랑 B 상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봤다. 나는 그와 그의 식솔들에게 듣고 싶은 말은 없었고 하고 싶은 말 역시 없었다. 말을 하려면 판사 앞에서 직접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지저분한 말싸움에 절대 끼고 싶지 않았다.


또다시 본인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자 그는 식솔들을 전부 내보냈고, 반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억은 전부 빼돌려놨으니 찾지도 못할 거란다. 그 상황이야 그의 재산 조회를 통해 우리는 이미 전부 알고 있어서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다만 나 자신이 과거에 이런 후안무치한 사람 밑에서 일을 했었다는 사실에 점점 초라해지고 있었다.


아직도 회장 주변에는 호구들 몇 명이 있다.

그에게 도움을 줘야 우리가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몇몇 임원들을 보며 사기꾼을 아직도 믿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흥미로움까지 느낀다. 내가 8개월의 시간 동안 아무리 노력했다고 한들 회장의 판단 하나로 모든 것은 다시 결정된다.


그와 만남 이후 회장이 어떤 판단을 내렸을지 몹시 궁금했던 나는 회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Sorita : 회장님께서 이번 일 제대로 처리 못하시면 업계에서 회장님을 호구라고 생각할 거예요

회장 : 내가 왜 호구야!!!! 그럴 일 없어!


회장 앞이라 말을 굉장히 순화하여 '호구'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내가 정말 표현하고 싶었던 단어는 '공범'이었다.


이 사건 하나 빨리 처리하지 못하는 회장을 8개월 동안 지켜보며, 회장 또한 뭐가 걸리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도 했었다. 처음에는 모르고 당했더라도 현재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이 상황을 정리하지 않으면 그 역시도 곧 공범이 된다. 올해 이 일을 끝내는 것과 내년에 끝내는 것은 천지차이가 될 것이다. 이것은 내가 조바심을 가진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만약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일이 다르게 진행이 된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모시고 있는 회장의 그릇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니까.


우리 앞에서 너무도 당당하게 재산 전부를 빼돌렸다고 혀를 놀렸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입 안에 보이던 금이빨 하나까지 전부 뺏어서 회사로 되돌려놓겠다고.


그는 나에게 두드러기 같은 존재이다.

그와 관련된 상황을 떠올릴 때마다 목과 눈에 뾰루지가 심하게 올라온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보란 듯이 외부로 성과를 내게끔 하고, 더 열심히 살 수 있도록 원동력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올해는 뻔한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이제는 그토록 기다리던 8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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