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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간방 박씨 Oct 05. 2022

회장에 대하여

나에게도 안티가 있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다

나의 전 회장은 초능력을 부릴 줄 안다고 쇼하더니, 지금의 회장은 관상을 볼 줄 아는 것 같다.


오늘 그는 사무실에 들어왔다가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서는 나의 부서 직원 중 한 명을 당장 자르라는 명령을 내렸다. 세계 대학 순위 20위 권 안에 드는 친구인데 자르지 않을 거면 공장으로 보내라니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회장은 그의 얼굴과 분위기를 보니 재수가 없었다고 한다. 당장 이 부서에서 내보내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라고 했다.


추석 전 태국으로 출장 가기 전에 나는 이 직원과 엄청난 이슈가 있었다.

어떻게든 마무리를 잘해서 출장을 가려고 '참을 인'자를 만 번은 더 새겼었나 보다. 스트레스성 탈모가 올 정도였고, 이 인간이 미치지 않고서는 왜 이러나 싶어서 구석으로 끌고 가 때리고 싶었다. 그래도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넘기려고 했다. 직급이 높은 친구도 아니라서 위에다가 보고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내가 따로 더 챙기면 되겠지!'라는 다짐만 태국 가는 대한 항공 안에서 만 번 정도 마음속으로 외쳤을 뿐이었다.


그런데 회장은 무슨 이유로 잠깐 스쳐 지나간 이 친구가 '재수 없음'을 느꼈던 것일까?

회장은 나의 전 상사를 보고도 '영혼이 없는 인간' 같다며 꺼지라고 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특히 사무실 안에서 식물이 죽어가는 것을 못 보고, 실내는 항상 청결해야 한다. (이 부분은 회장과 내가 굉장히 잘 맞는 부분이다. 그래서 요즘 회장이 키우는 나무들을 내가 관리한다.)


나는 관상쟁이 친구가 있다. 그래서 관상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신기하지는 않다. 회장의 관상을 보는 능력이 내 친구처럼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천억의 재산을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노력의 결과인지는 모르겠다.


회장과 친해지기 전에는 그에 대한 평가만 멀리서 들었다. 그는 의심이 일반 사람에 비해 100배는 더 많고, 그의 말 한마디에 회사 내에서의 사람들 목숨이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보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 임원들은 새벽 넘어서까지 그의 대화 상대가 되어 주고 있고, 불편한 점심도 같이 먹는다.


회장이 우리 엄마랑 나이가 동갑이니까 요즘 사람이라고는 말 못 하겠다.

요즘 같은 때에 회장의 행동을 보면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사회는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회사 생활이 과거 10여 년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장은 과거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전무와 상무 삼촌들이 회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없는 말을 꺼냈다가 실체에 없는 거짓말임을 뒤늦게 깨닫고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분들도 있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아빠처럼 정년까지 보장이 되는 곳에서 일을 하는 게 나았으려나 싶기도 한다. 왜냐면 가끔 퇴근 직전에 올라오는 회사 공고 게시판에 올해만 해도 살얼음판이었던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소차장이다.

어쩌면 나도 이 회사에서 미래를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회사 생활에서의 영원을 꿈꿨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소사원이었을 때는 나도 승진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어서 어떻게든 대리까지 버텼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과장이 되어 보니 대리였을 때보다 특별히 더 재미난 것도 없었다. 회사 생활에서 나의 마지막은 언제나 '대리'까지였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내일 당장 어떻게 되든 크게 놀랍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내가 회장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사실 이런 것조차도 궁금하지 않다. 회장과 가까워지니 오히려 나의 안티가 몇 명 생긴 것 같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안티가 있을 수 있어도 회사에서 내가 안티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내가 맡은 일 매일 차질 없이 처리하고, 매출 100%를 매 달 달성하는 나를 싫어해야 할 이유를 나 자신은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도 인간인지라 오늘은 나의 안티 중 한 사람에게 나의 입장을 전달했다. '나의 매출에 1억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는 인간의 말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성대 법대 나와서 사법고시를 몇 년간 준비하다가 그만두고, 그의 아빠 백으로 겨우 입사한 기획팀 오빠는 가끔 그가 변호사가 된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런 소꿉장난은 꽃집하는 와이프 치맛자락이나 붙잡고 할 일이지 왜 저러나 안타깝기도 하다.


아주 작지는 않지만 너무 크지도 않은 이 회사 안에서 외부 적을 잡았더니 이제는 내부의 적이 날뛰기 시작한다. 남을 깎아내려야 본인들이 살게 될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회장 주위에는 이렇게 똥파리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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