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콜롬비아 출장 중에 내 후임으로 들어올 거라는 한 사람의 이력서를 카톡으로 받았다.
당시 혼자서 사업부를 짊어지고 있었기에 사람이 절실히 필요했다. 하지만, 이력서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나는 카톡 메시지를 닫았다. 나보다 한 살 어린 남자는 이 나이를 먹도록 뚜렷한 경력 없이 떠돌고 있었다. 경력이라는 것이 고작 그가 3~5 개월 동안 짧게 무엇인가를 했었다는 것을 의미 있게 포장하는 것이었고, 회사 이름만 5개가 적혀 있었다. 기간은 1년을 넘기는 것이 없었다.
장돌뱅이처럼 보따리 짐 싸서 이런저런 회사 들락거리던 이 직원은 내 기준에 마이너스 150점짜리 인간이었다. 이런 사람이 당시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이 부서에서 어떻게 버티며 일을 할까 싶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잠을 3~4시간밖에 자지 못한 채 일을 2주 넘게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나는 이사에게 이왕 정한 것이면 최대한 빨리 사무실로 부르라고 카톡을 보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그 남자는 '채권추심'을 해 본 특이한 경험이 있었다.
유도를 좋아했다던 그의 가운데 손가락에는 당장에라도 압구정에 있는 성형외과에 데려가서 떼어내고 싶을 정도의 커다란 혹이 달려 있다. 불안할 때 습관적으로 그 혹을 잡아 뜯는 버릇이 있는 그 남자는 이력서에 있는 경력만 봐서는 '사원'의 직급이 맞다. 하지만, 이사는 그에게 '대리 1년 차'라는 후한 직급을 달아줬다.
나는 S대리에게 가리지 않고 쌓여있던 잡무를 시켰다.
그의 장점은 시키면 군말 없이 일처리를 바로바로 한 점이다. 하지만 업무 실수를 할 때마다 말도 안 되는 변명과 거짓말을 실실 웃으면서 해대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다. 실수를 했으면 '죄송하다, 잘못했다'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바로 수정하면 단순하게 끝날 일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본인 잘못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에 '이제는 더 이상 못 참을 것 같은데?'라는 인내심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입사한 후로 한 달 지났을 때였을까?
수레바퀴처럼 빙빙 돌기만 하는 그의 거짓말과 헛소리에 나는 사무실에서 큰소리를 조금 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유도를 좋아하고, 채권추심을 다닌 경험이 있는 한 사내를 울렸다. 그는 여러 가지 사건이 걸려 있는 당시 상황에서 나를 대변해주고 보호까지 해 주는 임무를 띠고 온 사람이라 냉정하고 강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때린 것도 아니고 멱살을 잡은 것도 아닌데 이게 눈물을 터뜨릴 일일까?
그날 밤 S대리는 술을 잔뜩 먹고 다음 날 10시에 출근을 했다.
그렇게 그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던 나에게 또 한 번의 잔소리를 들었고, 앞으로 한 번만 더 지각을 할 경우에는 자비가 없을 거라는 협박까지 받았다. 어쩌면 S대리의 이력서처럼 이번에도 몇 개월 만에 퇴사하고 또 다른 곳을 찾아 헤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업무를 하면서 그의 본업이었던 '채권추심'에 더 열심이었다. 나를 대리하여 사채업자와 교신도 원활히 했다. S대리의 이력서를 다 읽어보지 않아서 추심 관련하여 얼마나 어떻게 일을 했는지는 모른다. 3개월이 지나고 시간이 더 흐를수록 그도 어느 정도 업무를 익히면서 나 역시 많은 부담을 내려놓고 출장을 다닐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가끔 그는 얼굴에 상처가 있는 채로 출근을 했다.
옆을 지나가면 술냄새가 났고, 눈두덩이에는 뭔가에 찍힌 상처가 뚜렷했다. 어디 다친 거냐고 물어도 자다가 침대에 찍힌 거라고 손을 저으며 부인했다. 그리고 오늘, 그는 또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이마에 커다란 혹을 달고 출근했다.
Sorita : S대리야, 무슨 일 있어요?
S대리 :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뇨? 아무 일도 없는데요?
그가 입을 열자 술냄새는 마스크를 뚫고 내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지금까지 이런 인간하고 상종을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지라 이상황이 너무 신기했다. 또 한 번 지각하면 경위서 쓰고 뒷일은 장담 못한다고 했더니 술에 취해서도 회사에 지각은 안 했더라.
Sorita : 혹시 도움이 필요해? 내가 경찰에 신고해 줄까? 누구한테 맞고 다니는 거야?
S대리 : 아니에요, 어젯밤에 문에 찧어가지고 그런 겁니다
Sorita : 너 지금 이거 한두 번 아니거든. 싸울 거면 이기고 오던가... 왜 얻어터지고 오는 거야?
S대리 : 아... 진짜 싸운 게 아니고요 이거 부딪힌 건데...
Sorita : 그려~ 맞고 다니는 거 아니면 됐어
가까이에서 그의 이마를 보니 피멍이 들었고, 꼴도 말이 아니었다.
며칠 전에 파마까지 하더니 오늘 행색은 얻어터진 간악한 오랑캐처럼 보여서 일을 하면서도 자꾸 웃음이 났다.
평범한 회사원들은 절대 겪지 않을 더러운 사건 경험을 공유하며 S대리와 함께 지낸 세월이 벌서 7개월이다. 다행히 그는 아직까지 나와 함께 일을 계속할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S대리가 현재 건물 몇 호에서 근무하는지 알지 못한다. 유일하게 CCTV가 달려 있는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우리는 이제 거의 각자 업무의 영역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굳이 과거를 모르는 게 나을 것 같은 S대리에게도 출장의 기회를 줬다. 어떻게든 업무에 대한 동기부여를 제공해서 이제는 우리 둘 다 '채권추심'이라는 단어를 잊고 즐겁게 회사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