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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Oct 10. 2017

네 영혼의 미안함

죄책감 때문에

맨 나중에야 내가 원하는 걸 말할 수 있었다.


미리미리 원하는 것을 요구할 죄에 걸맞게 차곡차곡 착한 일을 쌓아 올려야 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 직전에 나는 죄책감으로 내 다리를 부러뜨러버렸다. 내 발로 성큼성큼 나아가 상을 받지 못하도록.


그 일은 역사가 오랜 일이었다.

대학 시험을 앞두고 나는 동네 액세서리점에서 500원짜리 귀걸이를 훔쳤다. 오래된 재고를 털어내기 위해 올망졸망한 귀걸이를 잔뜩 쌓아놓고 '500원'이라고 쓰인 종이를 대충 꽂아둔 작은 바구니에서 였다. 그집은 우리 엄마가 자주 가는 단골집이었고 어릴 적부터 용돈을 털어 엄마 생일선물이나 기념일 선물을 사던 곳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인아줌마는 내가 갖고 싶어하면 그냥도 집어줄 사이었다(내 결혼식에도 오셨다). 그러나 대학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친구 둘과 그 앞을 지나치다 충동적으로 귀걸이 한쌍을 집어들고 나왔다. 친구들은 웃음을 참으면서 밖으로 나오자 마자 " 얘가 물건을 읍!쳤대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친구들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한짓을 깨달았다.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쳤으나 이미 일은 벌어졌다. 다시 제자리에 갖다두고 싶었으나 그러다 걸리면 내 도둑질이 탄로날 판이었다.

 이후 일주일간 나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그 일만 떠올랐다. 이렇게 나쁜 나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확실히 알수 있었다. 대학시험에 붙고 싶었지만 그럴수 없으리라는 건 뻔한 일이었다.



죄책감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에릭슨은 주도성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 죄책감은 이렇게 말한다.

네 인생을 네 생각대로 살려고 하다니 미안하지도 않느냐!

너의 인생이 너의 것인 줄 아느냐!

너의 어머니가, 너의 아버지가,

네가 책임져야할 동생이

네 가족이 있다는 걸 잊고 있다니!

네 자식들을 팽개치고 네 인생을 살려하다니

그 인생이 잘 될지 한번 보자!

내 안의 죄책감은 나에게 말한다.

그 말은 너무 엄정하거 깊이 박혀있어

추려내자면 몸속의 뼈가 딸려 나올 정도이다.


그러나, 나의 영혼이여,

너는

마지막 심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너의 고통은 이미 말하고 있다.

너에게 물을

단 하나의 죄는 너의 인생을 버린 죄.

그 깊은 죄책감에 네가 아파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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