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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Mar 02. 2016

집 밖으로 나오다

#꿈 이야기

나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꿈 속의 나비는 자신이 장자인 것을 알고 있었다. 요컨대 앎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저절로 알게 된 앎들. 그것은 '하늘이 저기 있구나', 혹은 '내가 살고 있네'와 같이 나를 그리고 나의 외부를 구성하는 것들에 대한 앎이다. 그 외의 모든 앎들은 여러 정신 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것은 쉽거나 어렵거나 의도적인 노력의 결과이다. 그런 앎 중에 드물게 순간 알게 되는 앎이 있다. 그 앎은 짧은 순간 우리의 앎에 빛을 비추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어쩌면 그 앎을 오래 간직한다는 건 좀 힘든 일일 수 있겠다. 왜냐면 이제껏 우리가 발로 딛고 있던 땅과, 그리고 우리 자신을 구성한다고 믿었던 것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나비는 자신이 나비인 걸 쭈욱 알고 있었지만 순간 나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꿈이 아니라고 믿으면서도 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날밤 나는 깊고 깊은 집을 빠져나왔다.

그 집이 어떤 집인가. 사십여년간 나는 꿈 속의 그 집을 빠져나가려 애썼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려고 할수록 집은 살아 움직이는 괴물처럼 저절로 커졌다. 어디에도 밖으로 나가는 문은 없었다. 문을 열면 또다른 방. 그리고 또다른 문이 내 앞에 나타났다. 밤 마다 나는 수천 개의 문을 열면서 그 집 안을 떠돌아 다녔다.

  집은 때론 높디 높은 건물이 되기도 했다. 건물 꼭대기서부터 나는 계단을 따라 밑으로 밑으로 내려갔다. 어린 아이처럼 계단 난간을 타고 내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내려가도 아직 나는 허공 어디엔가 있었다. 내 발은 지상에 닿지 않았다.

  그날밤 꿈 속의 나는 커다랗고 고요한 일본식 목조 가옥 어딘가에 있었다. 아, 생각해보니 전처럼 숨차게 헤매지 않았다. 난 공기처럼, 창호지 사이로 뚫고 들어온 빛의 입자처럼 그 집안을 돌아다녔다. 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정교한 격자 문틀은 오랜 손길에 길들여져 은은한 광택이 배어났다. 미로처럼 짜여진 몇 개의 방을 건너가자 현관이 나타났다. 현관은 아름다운 나무 조각들로 장식된 서양식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현관 앞에 어떤 여자가 앉아있다. 나갈 수 는 없을 것 같았다. 붙잡힐 것 같았다. 그녀 앞의 좁은 공간을 눈에 띄지 않고 나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보았는지 일어나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마음과 달리 거침없이 현관을 가로질러 문을 열고 나왔다. 다시 보니 집은 시원하고 간결한 현대식 건물이다.

  이렇게 쉽게 나오다니!

  집을 나온 순간 나는 알아버렸다. 이것은 꿈이라는 걸. 그러나 내가 그토록 원하던 꿈의 결말을 이루어낸 것은 꿈이 아닌 현실임을!


나는 이제 걸어다녀도 나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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