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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Sep 23. 2022

사진 기억

그는 오늘도 나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경사를 올라가다 양쪽으로 난 작은 골목을 차례로 흘끗 보았다. 건너편 골목에는 담장 사이로 파란 차가 보였다. 더 자세히 보려고 몸을 빼서 들여다보니 그의 차는 없다. 좁다란 골목으로 들어서자 으레 미리 와서 기다리는 검은 차가 보였다. 내가 문 손잡이를 당기기 전까지도 내가 온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검게 코팅한 차창 안으로 핸드폰의 영상이 보인다. 잠겨있는 문이 덜컥 소리를 내자 그가 문을 열어주었다.

 차에 올라탈 때의 짧은 순간을 어떻게 얘기할까?

차에 탈 때는 문을 열고 몸을 숙이면서 다리가 먼저 차 안에 들어가야 해서 그의 얼굴을 먼저 볼 수가 없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나는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단절을 느낀다. 시트에 몸을 제대로 앉히고 나서야 고개를 돌려 그를 볼 수 있다. 아니 몸만 앉혀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가방도 잘 놓아야 하고 차문도 끌어당겨 닫아야 한다. 그런 후에야 그를 볼 수 있다. 그 시간이 왜 그리 길게 느껴질까? 한때는 보자마자 그를 웃기려고 개그맨 같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면서 들어섰다. 그러면 그를 보지 못하는 그동안 그의 웃음소리가 차 안에 퍼진다. 차라는 좁은 공간에 나를 욱여넣으면서 그 낯선 순간을 따뜻한 웃음소리로 채우고 싶었나 보다.

그는 파란 바탕에 가는 흰 줄이 크게 격자무늬를 그리는 얇은 양복지의 슈트를 입고 있다. 안에는 셔츠 대신 검은 터틀넥 니트를 받쳐 입었다. 그는 어지간히 추운 날에도 옷을 따뜻하게 입지 않는다. 나는 그런 그가 안쓰럽다.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나를 바라본다. 그는 가볍고 간결하다. 아, 그가 웃고 있다.

오늘도 잠깐, 차 안에서만 그를 보고 왔다.

이런 그의 모습이 훗날 보고 싶을까 봐.

나는 그의 모습을 남겨둔다.

그런데 정작 그를 그려낼 수 있는 언어가 나에게는 없다. 풍성한 웃음과 너그러운 주름들.

햇살처럼 내게 부어주는 따뜻한 눈빛.

내가 붓으로 그의 얼굴을 남긴다면 화폭에는 부드럽고 따뜻한 그의 빛만을 그릴 수 있으리라.  2016.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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