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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Sep 18. 2018

쓰레기통

어제 저녁에는 아들과 치킨 첫 조각을 들었을 때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잠시 머뭇했다. 

쓰레기통이 필요할 때만 전화하는 사람이 있다. 


"아들이랑 치킨 먹고 있어요. 쩝쩝"

일차 쿠션에도 미동이 없다. 

"응 통화 어려워?"

"쩝쩝"

끓을 기색이 없다. 

"한 오분 괜찮아요."

갑자기 본격 시작한다. 

"자기는 지난 토요일날 기분 안나빠았어? 아니 내가 이상한거야?"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하지만 딱 자르며 말했다.

"저도 기분 그랬죠."

"아니 00는 원래 성격이 그래? 아니면 내가 그동안 몰랐던거야. 나 진짜 기분 나빠서."

"원래 그렇잖아요."

"아니 그니까 왜 말을 그렇게 해? 자긴 기분 안나빴어? 말해봐. 내가 이상한거야?"

이런 사람이 왜 힘드냐면, 부정적인 단어가 상대 입에서 나올 때까지 

자기 입은 절대 더럽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도 한마디 했잖아요."

"아니 그니까 자기도 기분 나쁜 거 맞지? 그 사람 원래 그런거야?"

"네 전 알고 있어요."

"뭐야. 그 사람 그런 거 화 안나?"

"네 그냥 알고 있죠. 저도 기분 나빠요."

"아니 알고만 있으면 다야?"

"네 그냥 알고 있는 거에요."

"허, 그래. 참 속 좋다."

"저도 좋진 않아요."


전화는 그렇게 끊었다. 

누군가는 우리 속을 뒤집어 놓는다. 때로는 그런 사람을 안만날 수도 없고, 누군가의 비호를 받고 있어

건드릴 수도 없으며, 표면적으로는 적극적이고 쾌활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젠장!

젠장이다.

누구든 그를 만나면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다.

전화한 그녀는 그 쥐나는 상태를 나에게 쏟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난 20년간 연대와 공감이라는 이름 아래 받아주었다. 

때론 내 감정이 아닌 것까지 받아서 돌려줘야했으며

아주 독한 것은 받자 마자 퉤퉤 뱉어내고 싶었지만

그 사람을 위해 물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이제 나는 나를 지킬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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