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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Apr 19. 2016

살의 기억

살 속에 묻혀있던 기억이 깨어났다.

"너를 본 적이 있어."

"그곳이 어디일까?"

남자는 자기가 방황하던 수 없이 많은 거리를 떠올렸다.

"내가 너를 만났다면,  널 알아보았을 텐데. 나는 널 찾기 위해 거리를 헤맸어."

"나는 네 체온을 기억해."

그녀는 그를 만지면서 눈을 감았다.

"나는 너를 엄마 뱃속에서 만났어. 우리는 매일 살을 맞대고 있었어. 나는 너의 온몸을 모두 기억해."

남자의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남자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들여다 볼수록 그녀는 자신을 닮았다.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들이 하나의 세포를 나누어 가진 쌍동이라는 사실을.

그녀의 몸을 따라 남자의 손길이 미끄러졌다. 물감이 번지듯 그녀가 번져왔다. 손끝에서부터 감염된 그녀가 남자의 심장을 두드리고, 머리 속에 불을 밝혔다. 어느새 성기가 팽팽하게 부풀었다. 여자는 남자 몸에 얼굴을 묻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서로의 몸을 덮고 있던 색깔이 툭 떨어졌다. 남자는 가만히 여자를 보았다. 이음새도 장식도 없는 하나의  몸.  "이것이 너로구나" 그는 얼굴을 들여다보듯, 그녀의 몸을 보았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따라 가늘게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 속에  담겨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알아봄이었다. 그는 거리에 묻혀 있던 나를 알아보았고, 옷 속에 묻혀있던 내 몸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살 속에 묻혀있는 내 그리움을 알아보았다. 태 속의 추억을 깨웠다.

그가 그녀의 몸 깊숙히 들어왔다.

몸이 깨우는 시간은 공간을 열어준다.

둘은 세포가 분열되기 전의 하나가 되었다. 공간이 한 점이 되고, 시간은 태초가 되었다.

하나의 폭발. 세계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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