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 쑤 Sep 05. 2016

이상한 오후

이상하다.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미간에 부연 안개라도 낀 듯 시야가 좁아졌다.


지난 밤이 힘들었던 건,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고 치자.

문제는 아무리 의식을 또렷하게 집중하고,

생각을 하려 해도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야할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아침부터 바쁘게 두 곳을 찍고

누구에게 부탁하기도 애매한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했다.

산적한 할일이 부담이 됐지만,

익숙하다.

늘 그랬다. 슬픔이 밀려오기 전에

기계적인 잡무에 빠져들기.

기시감이 들자 묘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생존기술이 그렇다.

제일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살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있다.


오후가 되자

견갑골을 헐거워지면서

양 어깨가 솟았다.

점잖게 붙이려하니

신음소리가 터져나온다.

무리하게 마신 커피가

불안을 점화한다.

마음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현실의 반만 경험하려는 계획은

위험하다.


얼른 목을 뒤로 젖혀

꿀꺽 하고 피냄새를 삼킨다.

노을이 질 때 돌아다니는

햇빛의 날내를 맡고 싶었다.


어쩌면 누구도 내 영혼의 전부를

만나지 못할 지도 몰라.

그럼 나는?


해가 저물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