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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Dec 27. 2016

해병대의 추억

대학 시절 남자 선배들이 만나면 군대 이야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눈은 왜 그렇게 빨리 쌓이며, 고참은 하나같이 개자식들이고,

그런 얘기들, 하나도 재미없는 얘기들.


어릴 적 외가댁에 가면 비슷한 얘기들을 들었다.

이모들이 한방에 둥글게 모여 저마다의 시댁 얘기를 한다.

얼마나 저들이 경우도 없고 며느리는 사람 취급도 안하며,

하나같이 말도 안되는 걸로 자신들를 괴롭히는지.


지금 보면 상관이나 시어머니와 맞장 뜨지 않고,

거기서 살아 남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란 걸 알지만.


어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다 같이 모여 누군가를 욕하는 분위기도 싫었고,

어떻게 여기 있는 사람들만 정상이고, 그들은 몽땅 나쁜 사람일 수가 있는가.

절대로 납득할 수 없었다.

사실 이야기를 들어도 잘 알아듣기 힘들었다.

나는 어쩌면 다른 사람이 아파하는 걸 잘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거 같다.

그들은 화를 내고 있었지만, 사실은 아프다고 말하기가 멋쩍어서 그랬던 거다.


해병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군대 얘기를 못한다.


인간에게 가장 힘든 것은 비정상적인 환경이 계속 되었을 때다.

하나부터 열까지 비정상적인데,

그걸 다 얘기로 담아낼 수가 없다.

그 환경에 오래 있으면 사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탓하게 된다.

아무래도 내가 이상한가 보다.

남들에게 얘길하면 남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 사람은 뭔가 과장을 하거나 자기중심적이거나, 너무 인내심이 약한 사람이 아닐까 하고.

"그래? 그런데 좋을 때도 있지 않아?"

"어쩌겠어. 우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

"생각하기 달렸어. 야 난 어땠는 줄 알아?"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고통은 누구나 두려워 하는 것이다.

점점 사람들에게 힘든 걸 얘기하는 것이 두려워진다.


그런데

가장 애석한 경우는 아예 스스로를 개조하는 경우다.

처음엔 고통에 분노하던 사람도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비명을 지르지 못한다.

무엇이 정상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환경에서 오는 신호와 내 느낌을 견주어서 판단하는데

비정상적인 사람들에 둘러싸인 사람은 자기가 비정상인 것처럼 생각하기 마련이다.

아, 이런 일로 화가 나는 내가 이상한 거 같아.

이럴 땐 힘들면 안되는 거구나.

스스로의 느낌을 긍정할 수 없을 때 인간의 자존감은 끝없이 하락한다.

자기의 느낌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점점 외부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게 된다.

이렇게 하면 인정을 받을까. 저들이 나를 인정하게 되면 내 얘기에 귀를 기울여 줄까.

내 느낌을 조금을 말해도 되지 않을까.

인간은 그렇게 변형되고 개조된다.

철저하게 자신을 몰아내고 외부의 것들로 채우고 나면 내 존재가 자랑스러워질 때가 오겠지 하고.


그런데, 그렇게 만든 자신을 누군가 별 것 아닌 걸로 생각할 때,

불같은 분노가 치솟는다.

생각대로 내가 움직여지지 않을 때, 인정받기 위한 내가 되지 않을 때

불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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