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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Dec 26. 2016

오늘의 단상

오늘은 가는 곳마다 새로 바뀐 모습이다.

대출 관련 서류를 떼러간 주민센터는 리모델링을 한 것 같았다. 처음엔 내가 뗄 서류를 신청서에 적느라 눈치 채지 못했다. 전에는 신청서가 이렇게 정렬되어 있지 않았는데 정도를 알고도 지난친 것 같다. 그리고 신청서를 내려고 직원 얼굴을 보느라 얼마나 바뀌었는지 몰랐다. 한 상급직원인 듯한 분이 얼굴을 찡그리며 이것 저것을 바꿔달라고 하는 중이었다. 그제서야 나는내가 팔을 기댄 스탠드가 유난히 희며 정면으로 보이는 장들의 문이 모두 새로 해넣은 밝은 판자색인 걸 알아챘다.

주민센터가 싹 바뀌었다. 늘 칙칙한 회색이던 창구 스탠드도 하얗고, 조명도 밝아졌다. 마감도 하얗다.

주민센터를 뒤로 하고 은행에 들렀다. 약간 비관적인 이야기를 듣고 나왔다. 집으로 갈까? 재고가 잔뜩 쌓인 상점이나 비운 채로 흉한 회색 콘크리트 속살이 보이는 빈 상점을 지나 서둘러 버스를 탔다.

내가 자주 가던 이태원 시장에 들러 겨울용 바지 한 벌을 사고 싶었다. 창 밖의 나무들은 세피아색 필터를 낀 것처럼 우울한 색감이었다. 버스에 내려서 걸어가는 길, 상점들은 아까와 비슷했다. 상점들은 문을 닫아 건 채로 있거나 세일 중 팻말을 붙였다.  아예 셔터를 내린 지 오래되어 보이는 곳도 있었다.  낡은 상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유리문이 바뀌었다. 깨끗한 새 문에 얌전하게 프린트된 공휴일 안내. 시멘트가 부서져 떨어져 나가있던 벽들도 깔끔하게 새로 칠해져있다. 이 곳도 언제인지 새단장을 했다.

 그러나 말끔해진 상가 안에는 사람이 없다. 밝은 조명은 오히려 사람없이 휑한 상가 안을 냉랭하게 비췄다. 내가 가던 가게 아주머니는 예의 그 눈웃음으로 나를 맞았다. 눈웃음은 그대로지만 흰머리와 주름이 늘었다. 여전히 나에게는 이천원을 빼주셨다. 두 개를 사려다 살찐 하체때문에 하나만 계산하기가 미안했는데 말이다. 그냥 나오기 뭐해서 상가를 한바퀴 돌았다. 내가 알던 주인들은 많이 그만두신 것 같다. 나만 보면 진짜 옷이 있는데 운이 좋다면서  마구 권하던 스타** 할아버지 가게는 문이 닫혀 있었고 행거 마다 두꺼운 천이 덮어있었다. 샤넬루와 디오루를 남발하시던 발음 좋은 할아버지상점은 두 집으로 나뉘어 밝은 조명을 단 ( 그 집은 너무 깜깜해서 옷을 입고도 옷태 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젊은 사장들의 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랫층로 내려오니 리모델링한 상점들이 많았다. 그런 집들은 스산한 흰 벽면을 배경으로 눈에 띠는 옷들이 걸려있다. 나는 걸려있을 때 눈에 띄는 옷을 싫어한다. 옷에다 장난친 것도 싫어한다. 좋은 옷은 얌전히 옷걸이에 걸려있고 상점 주인이 좋다고 꺼내주는 법이라고 믿고 있다.

 들어가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집이 하나도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상가 안의 가게들보다 길가의 상점들은 좀더 화려하다. 멋쟁이들이 많이 오니까 길 가에서 그들의 눈길을 확 잡아야겠지. 그러나 계절이 지나가면 아무리 화려한 옷들도 초라해진다. 각종 동물의 털과 다양한 빛깔, 주르륵 미끄러질 것 같은 실크 스카프나 구슬 장식 달린 탐스러운 구두들...상점마다 작은 알전구와 함께 뽐내듯이 있는 옷들이 조금 슬프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라 그런가.

한참 걸어야 버스를 탈 수 있는데 나는 반대 방향으로 틀어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앉았다. 아 이곳도 새로 내부를 단장했다. 좀더 세련되고. 간결하게. 메뉴도 시그니처 메뉴라고 멋진 광고판에 따로 걸어두었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바뀐다. 예전 것은 너무 빨리 구질구질해진다. 내 오래된 점퍼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면서 혼잣말을 한다.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럴테지. 하지만 나는 애인이 없으면 살을 빼든지 성형이라도 해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왜 그런지 화가 났다.

나는 느리게 변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슬픔을 덮어씌운 것 같은 리모델링이, 사라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처럼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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