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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Jan 09. 2017

John Berger를 그리며

나에게 21세기는 아직 낯설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들은(한 명 빼고) 모두 20세기 출신이다.


존 버거는 작가와 남자의 현현이다.

그는 진지한 사랑을 하고,

바람과 혁명에 삶을 바쳤다.

글과 생각으로 세상을 다시 보았고,

새롭게 만들고 싶어했다.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폴 오스터나 오르한 파묵,  호르헤 보르헤스, 움베르코 에코.

하지만 그들은  섬세하지만 끊어질 듯 아슬아슬한 신경을 가졌거나

순수하고도 미성숙한 소년의 눈을 지녔거나

징그러울 정도로 깊이 침잠해서 사람과 동물이 반쯤 섞여 있거나

혹은 살진 두뇌만큼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피부와 뱃살 때문에

나에게 남자가 아니었다.

그들의 글이 나를 매혹시키고, 넋이 반쯤 나가게는 했지만,

결코 그들의 얼굴을 쓰다듬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존 버거는 아니다.

그가 알프스 자락에 서서

거친 바람이 지나가는 풍광을 보며

꽃잎처럼 가벼운 사랑을 그리워 할 때

그의 사랑이 심장 속에서

붉고 뜨거운 피가 되어 온몸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가 경험하는 사랑은 근육이 되고 핏줄로 증거되는 사랑임을 알았다.



한 인간의 유한함이여.

아름다운 삶도 결국 끝이 있다는 것을.


그의 다른 책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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