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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Jul 18. 2023

나를 싫어하는 그 사람

글쓴이 : 와이프

나는 그동안 쉬운 싸움을 해왔었다. 벼락같이 화를 내도 바로 달래주는 남친1과 싸웠던 사실은 말끔히 리셋하고 보고 싶다고 전화 거는 남친2를 만났었으니까. 그런 내가 어려운 싸움을 한 적이 있다. 풀고 싶어 미치겠는데, 다시 부둥켜안고 사랑한다 말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쩔쩔맸다. 일주일째 다정한 말 한마디 안 하고 침묵의 동굴로 들어간 남편이 문제였다. 남편과 나는 마음에 흠짐을 내려고 공격하다가 서로 상처를 받고 마음혼수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나라고 멀쩡할리가. 핵폭탄급 공격을 받고 사랑으로 기름진 마음이 폐허로 변했다.


남편은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라 평소 싸울 일이 없다. 그러다 1년에 한 번 정도 폭발할 때가 있다. 둘 다 부정적인 감정은 잘 티 내지 않다가 모아두는 성향이라 그렇다. 남편은 재테크엔 관심도 없고 인스타를 달고 살고 남편에게도 돈을 빌려주지 않는 사람에다가 칠칠맞아서 항상 다치는 나를 싫다고 했다. 남편이 나에게 한 폭탄급 공격들은 구구절절 맞는 말들 뿐이라 말문이 막혔다. 그중에서 나의 마음을 폐허로 만든 핵폭탄은 "본인 몸 소중히 안 하는 사람한테 위로해주고 싶은 생각 없어"라는 말이었다. 나에게 위로할 생각이 없다니. 내가 다치고 싶어 멍이 들고 긁히는 것도 아니건만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아프다 그러면 위로대신 비난이 오겠구나. 나도 나대로 절망회로를 돌렸다.


나는 전쟁을 멈추고 폐허에 싹이라도 틔우고 싶었다. 남편과 꽁냥 하는 풍성한 마음상태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네이버에 부부싸움을 검색하고 유튜브에 관계를 풀기 위한 강연을 찾아보았다. 박재연 인간연구소 소장의 강연을 보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해법이 보였다. 소장님은 가까운 사람이 말로 상처를 줄 땐 그 말을 다시 번역하라고 했다. 그 말은 분명 부탁과 감사 중 하나로 해석이 된다고 했다. 검지 손가락 두 개를 교차로 돌려가며 남편의 말을 번역했다. "혜서야 나는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를 위로하지 않겠다는 말은 사랑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부탁의 말로 듣게 되었다.


싸우지 않은 오늘. 남편은 나를 일 열심히 하는 아내, 관종, 극 E, 까다롭거나 까다롭지 않은 사람이라고 한다. 남편이 아는 나의 모습이 예상과 똑같았다. 내가 모르는 내 모습은 싸움 중에 알게 된다. 나를 공격하는 단점들은 나에게 숙제가 된다. 바꿀 수 있는 모습도 찾고,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모습도 보고, 그의 표현을 번역한다. 숙제는 밀린 여름방학 일기처럼 몰아서 해서는 안된다. 바로바로 해치우다 보면 마음에 빛이 들고 싹이 튼다. 가끔 찾아오는 고통이 있어 사랑이 더 소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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