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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만혜서 Aug 15. 2023

혼자 슬퍼하고 있을 나에게

"기대도 돼"

나는 한평생 정신적 지주를 찾아다녔다. 짧은 대화에도 나의 한 가지를 발견하면 열 가지를 알려주는 사람, 흔들릴 때 꽃 피우는 법을 알려주는 넓은 마음씨를 가진 사람, 나를 잘 알고 나를 잘 기억하는 그런 사람. 삶에서 그런 큰 존재를 만나 기대고 싶었다. 나는 여태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부모는 투명인간이다. 아빠가 죽던 날, 나와 동생들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술과 노름과 고기만 좋아했고 계속해서 동생을 만들었다. 그러니 다행이었다. 엄마의 존재도 숨기고 살아왔다. 지적장애가 있는 엄마에게 평생 들은 말이라곤 "밥 먹어라, 밥 챙겨 먹었나, 밥 해먹고 사나"뿐이다. 회사 대리님이 요즘 일이 힘들어 대리님의 엄마에게 하소연을 했다던데 나는 그럴 수 없다. 나에게 부모의 그늘은 약하디 약하다.


선생님은 어땠을까? 초등학생 때 만난 조영희 선생님은 나의 실수를 흘겨보았다. 내가 선생님의 손등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잘못 찍어서 보인 선생님의 표정은 잊을 수 없다. 고1 담임은 단답형 인간인 나를 붙잡고 3시간씩 상담을 해서 싫었고, 고3 담임은 하필 영어 선생님이어서 멀어졌다. 나는 스승의 날이 그냥 지나가버렸으면 했다.


마을에서 친하게 지냈던 연희언니가 전학을 가면서 이웃과 집안에서는 대장노릇을 하였다. 학교에서는 아웃사이더로 살았고 가까운 친척은 나에게 잔소리만 하였다. 친척의 잔소리는 나에게 고문 같아서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 나는 삶 속에서 슬픔을 공유하는 법을 모르고 살았다. 늘 억울한 마음만 생각하다 눈물을 터트리기 일쑤였다.


나는 힘든 순간을 혼자 버텼다. 동생들이 다친 밤에도 병원 침대에 누워 이불로 얼굴을 감싸고 끅끅거렸다. 병실에는 엄마와 할머니와 친척들이 다녀갔지만 누구에게도 힘들다고 하지 않았다. 남자친구와의 휴가 약속이 깨지면 혼자 강원도 여행을 갔고, 헤어진 날에는 혼자 담티고개를 넘으며 길을 잃었다. 엄마대신 친척을 혼주석에 앉히기로 한 상견례 날에는 혼자 빠져나와 황강을 걸었다.


나는 무슨 자신감으로 혼자서만 감당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외로움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가녀린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꼴이다. 나를 살게 한 것들은 아카시아나무이거나 물결에 비친 햇빛이거나 냉메밀 한 그릇이었다. 나는 저 멀리 보이는 무용한 것들에게 기대려고 했다. 정신적 지주를 바라면서 사람에게는 터놓지 않았다.


내가 터놓지 않으니 다른 사람도 궁금하지 못했다. 같이 살던 여동생이 남자친구가 있는지 헤어졌는지도 몰랐다. 그 내밀한 속사정을 내 친구를 통해 들으면 배신감이 들었다. 남에겐 저렇게 쉽게 알려주면서 왜 가까운 나에겐 연약한 마음을 보이지 못하는지. 가족일수록 숨기기만 한다. 나와 같은 삶을 살았으니 내 동생도 나와 같다.


나는 글을 쓰면서 조금씩 터놓고 있다. 이 글을 쓰며 슬퍼하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왜 그러냐고 묻는다. 평소의 나였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피하려고 했을 테다. 지금의 나는 말은 못 해줘도 품에 안길수는 있다. 나는 "별일 없어?"라는 질문도 하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기대려고도 한다. 천천히 연습한다. 혼자만의 세상에서 단란한 삶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모두가 정신적 지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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