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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Park Nov 14. 2019

땅게라의 다음 순간

나는 잘 못하는 걸 계속 노력해 볼 만큼 배짱이 있는 사람이 못된다. 다시 말하면 약간씩 건드려 보는 일은 있어도 그리고 가끔 성공할 때도 있지만 길게 봤을 때 대단한 무엇을 성취하기에 내 그릇은 너무 fragile.

탱고를 처음 시작했을 때, 당시에는 초보에게 권해지는 룰이 두 가지 있었다. 땅게로에게는 "뭐든 당신 책임이다. 걸음이 흔들려도 스텝이 꼬여도 춤이 재미없어도 모든 것은 땅게로의 책임이다."라는 말. 땅게라에게는 "리드를 기다려라."

지금 들으면 지나치게 마초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대략 16~19년 즘 전이니까.

여하튼 그런 면에서 나는 대단히 재능 있는 땅게라여서 상대의 리드에 매우 잘 반응하고, 움직임이 가볍고, 기동력 있다는 평을 들었다.

나는 칭찬이라고 생각했고 밀롱가에서도 그럭저럭 생존해갔다.

5년즘 됐을 때, 뭔가 내 춤에 뭔가 더 필요하다, 또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딱 꼬집어서 말할 수가 없었다. 잡히지 않는 뭔가 분명히 느껴지는데 애써 어차피 프로 댄서가 되려는 건 아니니까..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리려고 했다.

10년즘 됐을 때, 올해로 막을 내린 어느 페스티벌이 2회즘이었을 때 그 당시 가장 유명했던 댄서 커플에게 개인 레슨을 들었다.

레슨을 같이 들은 땅게로와 춤추는 것을 보고, 다음에는 직접 나와한 곡을 추고 난 다음, 그 댄서는 내게 "너는 마치 마트에서 미는 카트처럼 움직여."라고 했다.

충격받은 척했지만 사실은 그가 하는 말이 뭔지 알고 있었다. 너는 미는 만큼 움직이고 매끄럽게 걷지만 무감하다..라는.

뭐 안다고 해도 고칠 수 있는 건 아니기도 했고, 이게 실은 춤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내 인생에서 가징 힘든 상대였던 엄마와 아이들을 같이 키우면서 시간이 지나갔다. 반년에 한 번씩 나가던 밀롱가를 주 단위로 나가게 되면서 나는 그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말하자면, 그렇게 가깝게 안고 추는 춤에서도 사실은 아주 원거리의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신호를 받고 그 신호를 따르는데 그 안에 내 의사는 살짝 숨겼다. 표현하기가 두렵고 표현하는 순간 이 춤이 너무 사적이게 될까 봐 두려웠다. 가슴을 붙이고 춤을 추면서 사적인 춤이 될까 봐 두려웠다니.. 얼마나 멍청한 소리인지.

겨우 지난해쯤 되어서야 나는 조금씩 내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리드를 하더라도 어느 순간 내가 듣는 느끼는 음악에 비해 너무 빨라지면 나는 잠시 멈춘다. 물론 그냥 멈추진 않는다. 지그시 누르고 스텝으로 약간의 박자를 쪼개거나 샤이닝(이 표현이 맞는지는;)을 한다. 이 멜로디를 표현하고 싶은데 땅게로가 멈춰 있으면 내가 품속에서 요동을 친다. 리드를 방해하고 연기하고 그러면서 음악을 들어보려고 애쓴다. 다행히 내가 춤을 시작했던 때와 달리 요즘은 땅게라에게 자신을 맞추거나 적어도 잠시 기다려주는 분위기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이렇지는 않고 때로는 그냥 흐르는 대로 두기도 한다. 아직은 내 사적인 무엇을 보여주기는 힘들지만 춤 추기는 즐거운 상대에게는 그렇다. 이게 가능한 건 직접 춤을 청하는 사람보다 까베세오(눈 맞춤)로 청하고 거절하는 분위기라 가능한 것도 같다. (화석 같은 땅게라로선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 정도 변화도 실은 무척 다행스럽다. 춤도 그렇지만 내가 싫어하는 수많은 나의 부분들을 이젠 좀 포기하게 된 것 같아서.

언젠가 어느 일본 작가는 결혼도 어떤 연기..라고 했었다. 주인공이 상대방에게 더 이상 연기를 하기가 어려워지면 그만둬야 하는 인생극장처럼.
비슷한 시기에 나는 결혼에서도 연기를 그만둔 것 같은데 다행히(?) 나는 프로그램을 포기하기보다 다큐에 한 번 걸어보기로 한 것 같다. (같다
..고 할 수밖에 없는 건 나도 알고 한 결정이 아니고 어느 순간 갑자기 이루어진 것도 아니라서)

그렇지만 일.. 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겠다. 아직 애들 아빠가 회사를 다니고 아이들은 손이 많이 가는데 일을 찾겠다는 생각 자체가 사치.. 인 것도 같다가, 그렇지만 그냥 이렇게 앞으로 주욱 나이 들어가는 게 좀 무섭기도 하다. (애들 아빠가 일을 그만두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도 물론 있고)

나는 겨우 주변의 누구, 내 옆의 사람, 눈앞의 상대와 의사소통을 시작한 거라 그건 어쩌면 바라지 말아야. 할 지나치게 원대한 목표인지도 모른다. 단, 이제와 서야 가끔 궁금해지긴 한다.. 어느 만큼 갈 수 있을까. 어느 정도 단단해질 수 있을까. 어느 만큼 휘었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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