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e Park Apr 10. 2021

댄스 슈즈

결혼 전에 신던 댄스화들은 정말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까지 신곤 했다. 더 이상 이것은 신발이 아니다.. 의 상태랄까.

 그러다 회사를 다니면서 더 굽이 높고 화려한 슈즈를 두어 켤레 마련했지만 아무래도 전만큼 자주 밀롱가를 가지 않아서인지 그럭저럭 8년 정도 신었던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주에 발목을 감싸는 스크랩을 거는 고리 부분이 닳아서 절반쯤 끊어졌다. 

바느질이라곤 단추도 달지 못하는 나로서는(자랑이 아님을 본인도 알고 있습니다만,)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만일을 위해 벼룩시장에서 싸게 구입한 슈즈도 앞부분이 살짝 뜯어져 헐값에 나왔던 거라 고쳐야 할 신발이 한꺼번에 두 켤레나 생겨버렸다.

 좀 고민하다 일단 집 근처의 구두 수선집을 찾았다. 나이가 지긋한 수선공 할아버지는 안경 너머로 날 보더니 똑같은 색깔(아주 붉은)을 맞출 수 없을 거라고 슬쩍 밀어내셨다. 나는 색은 전혀 상관없으며 안되면 검은색으로 바꿔도 된다고 말했다. 그럼 양쪽 색깔이라도 맞추려면 둘 다 맡겨야 되니 수선비가 두 배가 될 거라고 또 머뭇거리신다. 이번에도 나는 색깔이 달라도 상관없고 그저 신을 수만 있으면 된다고 살짝 고집을 부렸다. 그제야 할아버지는 나를 올려다보더니

알았으니 두고 가라고 그리고 가져온 신발 담는 천가방도 하나 두고 가라고 했다. 

그리고 오후 느지막이 다시 수선집을 들렀다. 할아버지는 아침과는 사뭇 다르게  표정이 부드러웠다. 색깔도 신경 쓰지 않는다니 끈 부분도 닳아있는 곳은 가죽이 갈라진 부분은 본드로 붙여놓았고 혹시 끊어지거나 하면 다른 천을 대어서 박음질을 해주겠다고 하셨다.

뭐랄까, 색깔이나 모양에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화려한 신발의 주인 치고는 그저 고쳐 신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단순함을 높이 사주마.. 뭐 이런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아마도 신발을 살 때 같이 받은 주머니에 탱고 슈즈라는 로고가 적힌 걸 보신 것도 같고. 나는 갑자기 ‘고쳐서 신을 수 있으면 되잖아 ‘라는 대전제에 암묵적인 합의가 가능한 상대로 탱고 슈즈 사용자와 수선 기능 보유자 간의 희귀한 종류의 신뢰를 확인한, 매우 거창하고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주엔 몇 년 간 신지 못했던 신발을 한 켤레 또 들고 가볼까 싶기도 하고 여하튼 든든한 뒷배가 생긴 것 같아 흐뭇한 노회 한 땅게라 일기.

이전 04화 감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