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콧물감기 때문에 열이 좀 났다. 어제 병원에서 준 감기약을 먹였지만 하루는 꼬박 열이 날 거라고 (올해 새로 문을 연 소아과 병원의) 의사가 한 말이 있어서 준비해둔 해열제를 한번 먹였더니, 다시 잠들었다. 서너 시간 자고 열은 좀 내렸는데 속이 허전한지 우유를 달래서 데워 먹이고는 한참을 침대맡에 앉아 어름어름 밝은 창을 보고 있었다.
이런 날은 괜찮다. 잠도 좀 잤고, 기침은 다행히 심하지 않고, 열도 내려가는 모양이라 걱정은 좀 되지만 조마조마할 정도는 아니다. 다시 잠들면 아예 늦잠을 자버릴 것 같아서 잠깐 이것저것 뒤적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본다. 이 그림에 대해서 누군가는 도시의 외로운 밤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약간 다르다.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약간의 설레는 아늑함과 흥분이 느껴진다. 밤을 지새우는 건 낮과 닮았지만 속성이 다른 세계를 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E.A. 포의 <모르그가 살인 사건>의 인물들처럼 낮에는 창을 가리고 책을 읽고 밤에는 산책을 다니는 한량 혹은 잉여 인간들의 세계는 그런 공모 의식이 감지된다. 그러니까 밀롱가의 마지막 춤이 끝나고 하나 둘 밀려 나오듯 거리로 나선 몇몇 들이 만들어 내는 게으르고 지친, 그렇지만 묘하게 개운한 밤의 기운이다. 아이의 침대 곁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세계이지만 그렇다고 분리된 곳은 아니다. 나는 이제 주인을 지키는 길들여진 여우처럼 충직하게 이 자리에 앉아있지만 밤은 여전히 신비하고 친숙하다. 이런 묘한 열기를 모른다면 호기심에 버둥거리겠지만 나는 이제 앉아서 호퍼의 그림을 좀 더 느긋하게 바라본다. 간질거리는 봄의 냄새와 함께 넘나드는 공기 속의 물기를 통해 좋았던 시절을 만지며 어두운 밤을 밝히는 카페의 구석 자리에서 오늘 밤의 인물들을 바라본다.
아이가 깰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