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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Park Nov 14. 2019

어른의 춤

말을 걸어오는 땅게로



한동안 바쁜 일에 쫓겨 몇 달을 들르지 못할 때도 있지만 여전히 밀롱가는 특별한 장소다. 나를 포함해서 아마도 탱고를 추는 모든 사람들에게.(그렇지만 어떤 장소..라고 해서 텅 빈 플로어를 밀롱가라고 하진 않는다. 그래서 밀롱가는 ‘있다’, ‘없다’가 아니라 ‘열린다’라는 서술어가 어울린다.)

그렇지만 춤에서 느끼는 그 ‘무엇’ 중에서 절반은
음악이나 그 날의 분위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름 붙이기 힘든 어떤 것들이 결정하고 그 나머지 중에 다시 절반은 함께 춤추는 상대에 따라서 달라지고 그리고 나서야 겨우 내가 있는데 그나마 오늘의 ‘나’라는 것을 과연 스스로 얼마나 통제해서 즐거운 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밀롱가에 간다는 건 그저 그날의 운을 시험해 보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

그 땅게로를 잘 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아주 낯선 사람도 아니다. 그저 여러 해 동안 밀롱가에서 지나치는 사람 1 정도의 존재감. 춤을 추게 된 건 아주 최근이니까 모르는 척인 채로 보낸 시간이 아주 길었던 셈이다. 더구나 나도 그도 그렇게 눈에 띄는 사람들은 아니라 그동안 너는 왜 그와 추지 않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지.

그렇지만 어떤 계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함께 플로어에 섰을 때가 무척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사람이긴 했다.

누군가와 춤을 출 때 아브라소, 안기를 하는 방식은 요즘은 대체로 정형화되어 있다. 어느 정도의 팔과 가슴의 각도로 어떤 자세로 안아라...라고 어느 유명한 댄서가 레슨에서 말한 순간 이후로 (물론 실제로 그 댄서의 아브라소가 안정적이고 우아해 보인다는 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욱. 그렇지만 아쉬운 점은 뭔가 그 사람만이 가지는 고유한 무엇이 옅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은 지우기가 힘들다.

그는 그중에서도 아주 드물게 자기만의 ‘안기’를 하는 땅게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가 안는 방식은 아주 ‘사적인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러니까 땅게라에게 ‘나는 지금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메시지가 전달되는 동안 음악도, 그날 밀롱가의 분위기도 어느새 배경으로 물러서고 잠시 지금 함께 잠시 걷도록 합시다..라는 제안을 받고 자연스럽게 응하게 되는 것과 같은 뭐 그런.

그렇게 함께 걷다가 음악이 끝나가면 예의 그  따뜻하지만 흔들림 없는 톤으로 땅게라를 놓아준다.

결국 밀롱가를 나서면 우리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는 남루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단 나는 그렇다.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춤도 그래서 어딘가 거부감이 있고 화려하더라도 내가 땅게라라는 것만이 중요한 건조한 춤도 버겁다

덕분에 그의 ‘말을 거는 방식’이 오히려 춤을 출 때에는 더 오래 기억된다.

인정 욕구에 시달리는 고수에 근접한 땅게로도, 밀롱가 밖의 무엇인가에 매달리는 누군가도 아닌, 그냥 하루를 살아냈고 또다시 그래야 하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

탱고란 ‘어른의 춤’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땅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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