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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Mar 12. 2019

추위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추위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반팔을 입은 남자가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씨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오늘 날씨는 영하 12도. 외투가 없는 그의 어깨와 팔목을 쳐다본다. 알 수 없는 추위를 느끼며 옷깃을 여민다. 바보 같은 말로 입김이 새어 나온다. 궁금하지 않지만 무엇을 사러 나왔을까? 이상한 궁금증도 가져본다. 겨울을 살지만 여기엔 내가 없다. 봄에 있기도 하고, 여름에도 가있고, 가을에도 가있고, 더위쪽으로 닿았다가 낙엽으로 아주 기울기도 하고. 울지 않는 밤이 생겼다.
 
 새벽에 전화를 받으면 슬퍼진다. “너라면 깨어있을 것 같아서” 받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기억도 못 하면서 웃었고 그렇게 조금씩 멀어졌다. 내가 입을 열면 너는 말이 없었다. 너를 아프게 하려고 그랬던 게 아닌데 그렇게 되어갔다. 누군가를 함께 만나러 가자는 말에 답하지 않았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보다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 는 말이 심장에 꽂혔다. 병원에 누워 세 번이나 살에 바늘이 꽂히면서 잊고 있던 마지막을 생각했다. 그래, 오늘일 수도 있겠지. 아내 곁을 지키는 남편과 아이 곁을 지키는 엄마와 아빠. 여러 사람이 왔다가 나가고 쉬지 않고 실려오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살아서 누군가의 걱정이 되는 아픔이 침대 속으로 들어왔다가 나간다. 파도에 휩쓸리는 돌들.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데 그런 게 있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테지만. 파타야 바닷가에서 사실은 나도 너와 같이 바다에 빠지고 싶었다는 늦은 마음을 전했다. 소나기에 도시가 잠기는 신기한 경험을 보면서 함께 웃었던, 누군가의 조는 얼굴을 함께 지켜보았던 어느 여름. 한국은 겨울이었다.

 외투가 없는 남자가 편의점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지 못 하고 시장을 지나친다. 도처에 널린 공포가 건너 건너 있는데 과장을 섞어 말한다. 무섭다고, 겁에 질리지 않은 눈동자로. 큰 개를 본 작은 개가 죽을 듯이 짖는다. 공격하지 않으면서. 다가설 수 없는 거리 어딘가 내가 있다. 곧 사라질 것을 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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