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말했다.
'너는 친구가 많아?'
나는 대답했다.
'아니.......?'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노동요로 틀어놓은 노래가 하필 '쇼미더머니'에서 나왔던 '불협화음'이란 노래였다. 제목을 뭐로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가사를 바꿔 제목으로 지었다. MBTI 'INTP'인 남자를 만난 지 2년 하고 반, 나는 밖순이에서 집순이가 되었고 앞자리가 바뀌어 이제 30살이 된 나는 몇 명의 친구를 잃으며 아싸가 되어가고 있다.
나의 20대를 3가지 단어로 설명하라고 하면 카페인, 알코올, 니코틴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대의 나는 출근 전 통장잔고에 5,000원이 있어도 1,5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먹는 사람이었다. 학교 수업이나, 회사를 퇴근하면 지인들과 하나 둘 모여 소주를 3~4병 마셨고, 그러다 틈틈이 술집 앞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곤 했다.
일주일이 7일이라면, 약속이 6일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 동생, 애인 나눌 거 없이 만나서 카페 갔다가 술집 가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이런저런 얘기하는 삶. 그런 삶이 즐거운 삶이라고 믿었었다.
약속 잡기 어려운 애. 인기 많은 애. 사람들이 찾아주는 사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모든 게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때 코로나가 찾아오고 나의 인싸 생활은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코로나 전에 신나게 놀았던 난, 코로나 거리두기, 밤 9시 집합 제한 등에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에 걸리는 게 두려워 약속은 최소한으로 줄이기 시작했다. 그땐 인싸보다 바이러스도 피하는 특별한 애가 되는 데 심취해 있었다. (실제로 나는 23년 12월 24일에 첫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한 번 멀어진 거리는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걸까? 멀어져 있던 거리만큼 만남을 기다리며 만났을 때 애틋했던 관계가 있는가 하면, 멀어져야 하는 걸 알면서도 붙어있길 원했고, 그걸 따라주지 않았을 때 영영 멀어지는 관계도 생겨났다.
20대 후반, 학교에 같이 가자며 신발주머니를 빙빙 돌리던 친구들이 이제는 모두 회사에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일을 하는 어른이 되었다. 퇴근시간도 제각각, 하는 일도 다 다른 사람들이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는 건 꽤 애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작가를 할 땐, 언제 퇴근할지 몰라 친구들과 멀어졌고, 회사에 들어가서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야근과 외근, 그리고 집과 회사까지의 왕복 3시간이라는 거리 때문에 친구들의 약속을 미안한 마음으로 거절해야 했다.
전전 남자 친구와의 만남도, 전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도 일의 연장선, 의무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몸이 피곤하니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귀찮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만 자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벽을 쌓으며 아싸의 길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2년 6개월 전,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나보다 더 I 성향이 강한 남자. 혼자 놀기의 달인인 사람. 처음엔 그 무뚝뚝함이 매력이었고, 그다음엔 관심사에 대해 신나서 떠드는 모습이 너무 재밌었다. 다만 헤어지고 보내는 메신저의 길이, 내용, 반응이 처음엔 너무 답답하고 단답이고 짧아서 많이 싸웠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냥 메신저를 잘 보내지 못하는 사람, 텍스트 쓰는 게 어려운 남자라고 이해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자취를 시작하고 남자친구와 집에서 노는 날이 많아졌다. 주변에서는 절대 그러지 말라고 엄청 충고했다. 하지만 공황장애로 사람들 많은 곳에 갈 때면 약을 먹어야 하는 나는 집 데이트가 너무 맘에 든다. 좋아하는 유튜브, 드라마, 예능, 영화를 틀어 놓고 하루 종일 보다가 낮잠도 자고, 배달 음식도 시켜 먹는 이런 생활이 너무 좋았다.
그렇다고 집 데이트만 하는 건 아니다. 박람회를 좋아하는 나 덕분에 남자친구는 도서국제전, 일러스트페어, 카페쇼 등 다 같이 다녀야 했고, 나의 "어디 가자!"라는 말에 단 한 번도 거절을 한 적이 없다. 매번 "그래!"라고 답을 해줬고, 정말로 같이 다녀줬다.
INTP 관련된 이미지를 찾다 보니 정말 INTP 그 자체인 사람을 나는 만나고 있었다.
이번 주 목요일에 나는 남자친구를 위해 데드풀과 울버린 내한 레드카펫을 신청했고, 휴잭맨 사인을 받는 영광도 누리게 해 줬다. 나는 너무나 야구에 푹 빠져 있어서, 남자친구 생일 2일 후와 내 생일 하루 전 날 이렇게 두 번 잠실로 야구를 보러 가기로 했다.
예전엔 주변에 사람이 하나 둘 사라지는 거에 무서움과 두려움을 느끼곤 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현재 나에겐 알코올도 니코틴도 없다. 그저 카페인만 있을 뿐 (커피는 도저히 못 끊겠다.) 이제 매일 만나고 연락하는 친구는 없지만, 언제 연락하고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들만 주변에 남았고, 내가 하자고 하는 걸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래'라고 대답해 줄 짝꿍도 옆에 있다.
지금도 이번 주 일하고, 녹초가 되어 쉬느라 급하게 부랴부랴 글을 쓰고 있고, 옆에는 혼자 '큭큭'거리며 유튜브를 보는 남자친구가 있다. 이게 행복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화수목금토일 야구를 보며 일주일을 보낸다. 그때마다 연락할 친구가 있다. 각자 본인들이 응원하는 팀을 칭찬도 하고, 욕도 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서로 힘든 얘기 요즘 사는 얘기로 넘어가 인생까지 토닥해주는 친구. 이게 정말 행복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아싸지만 나답게 '힙'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