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우울증 약에 의존하지 말고 너한테서 원인을 찾아봐!
네가 문제일 수 있어!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건 꽤 두렵고 무서웠다. 병원 기록이 남을까 봐, 나중에 취업이나 결혼에 문제가 생길까 봐 몇 번이고 병원 문 앞까지 갔다가 뒤돌아섰다. 집에서 매일 밤마다 울며 잠에 들고, 출근길엔 달려오는 차에 치여 죽고 싶을 때가 수도 없이 많았다.
하루는 엄마한테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도 되냐고 물어봤다. 웬만하면 안 갔으면 좋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가족에게 힘들다고 털어놨다. "너는 꼭 조금만 힘들어도 엄살이더라. 애가 왜 그렇게 나약해?"라는 말로 되돌아왔다.
몇 년을 참다 참다 정신건강의학과에 갔다. 아직도 나는 그때 결과 내용을 잊지 못한다. 자살위험도 99%.
인지하고 있었지만 수치를 눈으로 확인하니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나 많이 아프구나
그렇게 병원을 열심히 다니며 약을 먹던 시기, 내가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는 걸 아시던 여자 부장님은 손을 씻으며 나에게 말했다.
"너, 그렇게 병원이랑 약에 의지하지 말고 너한테서 문제의 원인을 찾아봐! 그거 다 네가 멘탈이 약해서 그런 거야! 알아?"
뇌가 순간 정지되었다. 그 당시 나는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매일 회사에서 힘든 얘기를 털어놓고 있을 때였다. 그때마다 의사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며 "병원에 와야 하는 사람들은 안 오고 상처받은 사람들만 병원에 와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부장님은 지금 내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나를 병원에 가게 만드는 사람이 본인인지도 모르면서!
그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또 바보처럼 "하하..."하고 웃어버리기만 했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내가 우울증인 걸 밝힌 게 후회됐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사람은 평소에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구나.'라고. 누구보다 우울증을 이겨내고 싶은 건 난데, 상처 난 곳에 소금이 뿌려지듯 속이 답답하고 아파왔다.
그날 이후 나는 부장님과 대화하기를 피했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날이면 다른 동료가 1층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올라갔다. (부장님은 매일 아침 누구보다 빨리 출근하는 분이셨다.)
지금은 우울증,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서로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는 반면, 여기저기서 상처를 받아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괜히 울적해진다. 좋아하는 책에서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어떤 말은 사라지지 않고, 상대방의 가슴에 남는다'는 구절.
그 책을 읽은 후부터 말할 때마다 항상 조심하기 시작했다. 어떤 말은 사라지지 않고, 상처로 남게 될까 봐 습관적으로 조심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밤마다 하루 동안 했던 말들을 되새김질하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나는 우울이란 우물을 파고 또 파고 들어가느라 아직도 우울증과 공황장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20대가 되고, 성인이 되면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얻은 건 마음의 병과 허약해진 몸이라니. '남'들 눈치 보며 '남'만 생각하다가 오히려 20대엔 '나'를 돌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오늘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뭐 어쩌겠는가. 30대에 좀 더 '나'를 챙기면 되지.라고 말하지만 오늘도 이불만 뻥뻥 차며 하루를 후회할 게 뻔하다. 아직도 아침마다 정신과에서 받은 약을 털어 넣으며 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다. 이 놈의 인생, 전생에 뭔 짓을 했길래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인가. 누가 인생에 정답 좀 알려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