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뒤에 리모델링할 예정이라 6개월 뒤에 나가셔야 해요.
그러니 계약서를 저희랑 6개월짜리로 다시 씁시다.
22년 7월 드디어 꿈에 그리던 혼자 살기를 마주하기 직전, 청천벽력 같은 연락을 받았다. 1년 계약한 오피스텔 집주인이 6개월만 살다가 나가라는 거였다. 분명 부동산에서는 아무 말도 없었는데! 이미 돈은 다 지불했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급히 회사에 연차를 내고 다음 날 집에서 부랴부랴 짐을 싸고 계약한 오피스텔로 향했다. 원래는 주말에 입주하기로 했지만 급한 대로 당장 입주하기로 마음먹었다. 하필 왜 이런 날 비는 내리고 난리인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옷이 든 쇼핑백이 찢어졌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운수 없는 날이었다.
집주인에게는 짐만 놓고 내려오겠다 말하고 정말 짐을 던지다시피 집에 놓고 관리실로 내려갔다. 소파에 앉으니 집주인은 구구절절 사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저희도 급하게 리모델링을 결정하게 되어서 어쩔 수가 없어요. 6개월만 살고 나가시거나, 아니면 2주 정도 시간을 드릴 테니 2주 안에 다른 집 알아보시거나 하세요."
"부동산은 아무 말도 없었는데요...? 지금 2주 안에 집을 또 어떻게 알아봐요... 저도 일하는 사람인데"
"저희도 어쩔 수가 없네요..."
부동산에 얘기하면 되냐니까 그럴 필요 없이 우리 선에서 해결하면 된단다. 판단력이 흐려졌던 탓일까. 나는 집중인에 말에 홀라당 넘어가 6개월짜리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기로 하고 다시 집으로 올라갔다. 얼마 뒤, 내 소식을 전해 들은 남자친구가 왔고, 우리는 집 계약에 대해 잘 아는 분에게 전화해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아니 애니가 나갈 필요는 없어. 그냥 살면 돼!
계약서는 이미 작성했잖아~ 그럼 괜찮아!
계약서대로 하자! 마음을 다잡고 내려갔는데 집주인은 살짝 화가 난 듯했다. 얘기 다 끝내놓고 왜 다시 도돌이표처럼 계약 얘기를 꺼내느냐는 태도였다. '저도 이런 일이 처음이니까요...' 마음속엔 내뱉지 못할 말과 욕들만 쌓여가기 시작했다.
남자친구의 열변에 집주인은 "그럼 월세 + 관리비 40만 원으로 하고, 6개월만 사는 걸로 다시 계약하시는 건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다. 나랑 남자친구는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 눈으로 '저 조건 콜?' '40만 원이면 살만하지. 콜' 말을 주고받았다.
집주인은 그제야 웃으며 수정된 계약서를 들이밀었고, 나는 한숨을 한 번 푹 쉬고 계약서에 사인했다. 더 완강하게 나가지 못한 건 앞으로 여자 혼자 살아야 하는데 혹시라도 불이익이 생길까 걱정되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짧으면 짧은, 길면 긴 6개월 뒤에 일어날 일을 미리 걱정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집 구하는 건 굉장히 힘들고 지치는 일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부동산에 연락을 하는 게 맞았던 거 같단 생각도 든다. 계약은 부동산과 했고, 부동산에 돈도 냈는데 부동산은 아무런 불이익도 없이 내 돈만 꿀꺽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의 20대 청춘시대엔 독립도 쉽지 않았다. 떵떵거리며 집을 나왔지만, 나오자마자 집 나오면 개고생이란 말을 이해해 버렸다.
지금은 저 집에서 나와 다른 집에 살고 있지만, 언제나 내 집 없는 슬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12월이면 이 집 계약도 다시 재계약을 할지, 이사를 할지 결정해야 하는데 그 어떤 결정도 쉽지 않다. 언제쯤 '집'을 생각했을 때 따뜻함이 느껴질까? 이번 달도 숨만 쉬고 잠만 잤는데 벌써 월세 내는 날이 다가왔다. 이번 생에 내 집이라 말할 수 있는 집에 살아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