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로 오늘 경기 LG트윈스가 승리를 가져갑니다!!"
직관 3번, 야구에 입덕하자마자
나는 패배요정이 되었다.
"야구에 빠질 생각 없어?" 친한 언니가 물어볼 때마다 스포츠에는 관심 없다며 거절했었다. 거짓 없이 사실이었다. 스포츠를 볼 때마다 선수들 다칠까 마음 졸이는 것은 물론이며, 크게 관심이 없기도 했다. 인생을 살면서 스포츠에, 그것도 야구에 빠질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지난 6월, 어쩌다 우연히 두산베어스 vs LG 트윈스 경기를 직관하러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때는 지난 6월 1일, 짝꿍의 친구 덕분에 야구장 티켓을 얻게 되었다. 한창 야구붐이라고 난리라는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애초에 관심도 없었고, 세상에 쏟아지는 뉴스, 이슈들만 보기에도 벅찼기에 스포츠까지 훑어볼 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에게서 티켓을 받아 온 짝꿍을 만나 잠실야구경기장으로 향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야구 직관을 하는 날이면 항상 날씨는 맑았다. (여행만 가면 날씨 빌런이 된다.) 그날도 어김없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계속되는 날이었다. 초등학생 이후로 처음 간 잠실구장은 엄청난 인파로 혼돈의 카오스가 따로 없었다.
티켓 바꾸겠다고 줄 서 있는 사람들, 음식 주문 하는 줄, 음식 받는 줄, MD 입장줄 등 그냥 온통 줄 서있기 바쁜 사람들이었다. 원체 사람들 많은 곳을 힘들어하는 나는 살짝 정신줄이 사라질 뻔했다. 꾸역꾸역 사람들 틈을 벗어나 잠실구장에 인기 메뉴인 '원샷'의 '치킨과 맥주'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
아니 도대체 이 사람들은 이런 인파를
얼마나 많이 응대해 봤길래
이렇게 체계적으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가.
처음엔 줄이 길어서 망설였는데, 막상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빨라 더 길어지기 전에 '원샷'에 줄을 섰다. 주문할 시간이 다가오고, 카운터에 서자마자 직원분들은 메뉴 접수 촥! 번호표 촥! 결제 촥! 끝 - 정말 1분 만에 주문, 결제를 끝낸 느낌이었다.
먹을 준비도 완료! 다시 줄 서서 야구장에 들어갔고, 정말 꽉 찬 좌석들에 한 번 놀라고, 뻥- 뚫린 채 멀리까지 보이는 잠실구장의 풍경에 두 번 놀랐다. 하지만 정말 놀란 건 이것이 아니었다. 바로 두산과 엘지의 응원 열정!!!!
경기 시작부터 쉴 틈 없이 응원하는 두산팬들과 엘지팬들의 열정에 어느새 나도 모르게 동기화가 되어버렸다. 그때부터였을까? 어느새 나는 두산팬들이 일어나서 응원하면 따라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엘리멘탈에 웨이드가 스펀지에 빨려 들어가듯 그렇게 두산베어스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가 두산베어스에 입덕한 날 두산은 LG한테 8:5로 졌다. 그렇게 나는 불쌍 입덕팬이 되어버렸다.
집에 오자마자 다음 주 주말, 두산 경기를 확인했다. 두산 vs 기아. 당장 기아팬인 언니한테 전화를 걸어 "언니 다음 주에 야구 보러 갈래?"라고 말했고, 언니는 완전 흔쾌히 "당연하지!"를 외쳐줬다. 내가 이때 바로 다음 주 경기를 보러 가기로 마음먹은 건, 두산베어스에 입덕한 것도 있지만 두산베어스와 망그러진 곰이 콜라보하는 스페셜 데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6월 9일 일요일,
두산 베어스 vs 기아 타이거즈는 2:8로 처참하게 졌다.
나는 두 번째 직관에서도 불쌍 입덕팬이 되었다.
계속 진다고 내가 포기하겠는가! 다시 찾아온 라이벌전, 7월 19일! 치열한 티켓팅 전쟁 끝에 2 좌석을 예매해 퇴근하자마자 잠실구장으로 달려가 경기를 봤다.
7:16 정말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다.
3번의 직관, 3번의 패배.
나는 불쌍 입덕팬인가. 패배요정인가.
그럼에도 야구 직관을 놓지 못하는 건, 집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매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 같이 응원하는 재미. 선수들의 시원한 홈런을 직접 눈으로 보는 재미, 중간중간 재밌는 관중 이벤트. 그리고 사람들 틈에 파묻혀 소리 지르다 보면 풀리는 스트레스.
지금은 완전히 야구에 푹 빠져, 오늘은 기아 vs 키움 고척돔을 구경하러 간다. (고척돔 가고 싶어서 기아팬 언니랑 가기로 했다. 두산 경기는 티빙으로 볼 예정이다...) 그리고 다음 주는 생일 기념으로 1루 레드석으로 직관을 간다.
요즘 취미가 뭐예요? 물어본다면 "야구 보는 거요" 특기가 뭐예요? 물어본다면 "야구 굿즈 사는 거요"라고 대답할 정도로 야구에 빠져있다. 인스타로 야구 계정도 만들 정도로 푹 빠져 있는 요즘, 아 무언가에 미치라는 게 이런 재미가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요즘 여러분은 무엇에 미쳐있나요? 무엇에 미쳐 스트레스를 풀고 있나요?
(하지만 두산베어스 경기를 보면서 스트레스도 같이 받으니... 풀고 받고.. 풀고 받고... 다시 생각해 보니 스트레스에 도움은 안 되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