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이토록 기다려온 건 와인의 뜨거움을 더 오롯이 느끼고 싶어서였다. 계단을 내려갈 때 어둑한 몽롱함이 더욱 꿈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마치 어릴 적 읽었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이. 굴속으로 굴러 떨어지면서도 내심 묵직한 기대감이 자리했을 것이다. 현실과의 단절. 내게 선택지가 있긴 할까? 아니 너무 많은 선택지는 오히려 타협하게 만든다. 이럴 때일수록 나를 더 좁은 공간에 자리잡게하고 더 밀도 있고 적은 선택지를 주는 게 좋을 수 있지. 커튼을 젖히고 들어선 공간은 좋아한, 좋아할 책들로 가득 차 있다. 어릴 때는 책은 깔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인지 요즘은 사람 손을 타서 첫 장이 열려있는 책들이 더 마음이 간다. 이미 수많은 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뻣뻣했던 그도 부드러워졌으리라 생각하면, 시골의 할아버지 품 같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할아버지 품에 안겨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우스워졌다. 그만큼 클래식한 매력을 느꼈다고 퉁쳐보자. 유독 표지가 못났다고 생각이 들던 책들도 꼭 이 공간에서 마주할 때는 그보다 잘 어울리는 옷을 입을 수가 없다. 무채색 코디가 쉽고 단순한 데에 반해, 채도 높은 패션은 허들이 높은 것은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나 밝은 노랑 옷을 입었을 때 쉬이 고를 수 있는 치마가 많을 리가. 이렇게나 다양한 그림체와, 책의 두께와 높이, 디자인,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조화를 찾는 것은 공간이라는 힘이었을까. 향기였을지도 모른다. 어둠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사장님께 달려가서 요목조목 당신의 견해를 듣고 싶다고 방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당한 거리감이 또 끈끈한 유대감에 힘이 되어줄 테지. 사장님은 나를 기억하는 핀트가 어딜까, 내 목소리의 톤일까, 외모일까, 옷, 분위기, 향기, 나를 형용할 수 있는 어느 지점이 기억의 선택을 받았나요. 뭐가 되었든 내가 이 공간을 기억하는 순간은 꿈에서 밖에 없다. 술에 야릇하게 취해있을 때만이 이 공간을 누렸던 나이기에, 날카로운 감각으로는 떠 올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