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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Oct 22. 2020

입맛




골목에 자리한 식당이었다.


유명한 곳은 아니었는데 한가하거나 맛없는 곳은 아니었다. 찾아가기 약간 애매한 곳에 있어서 아는 사람만 가는 곳 같달까. 나는 보통 누군가를 만나거나 미팅을 하게 되면 만났던 순간의 장면을 주로 기억하지, 그 사람과 먹었던 것, 했던 대화, 봤던 영화 등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이곳은 음식이 먼저 생각 나는 그런 곳이었다.


자주 가진 않았다. 

딱 세 번.

세 번 다 다른 사람과 갔었다.



처음엔 그가 나를 데리고 갔었다.

맛있는 곳을 발견했다며 이끈 그곳은 역에서도 멀었고 좀 걸어야 했으며 아담한 가게에 메뉴도 단출했다. 난 그가 추천해주는 음식들 중 하나를 시켰고, 정말 그의 말처럼 맛있었다. 그와 나눴던 얘기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떻게 이런 맛이 나오지, 오물오물 먹으면서 생각했던 기억만 났다.



두 번째는 내가 데리고 갔었다.

내가 살던 동네도 아니고, 블로그 맛집에도 나오지 않는 곳을 어떻게 알고 데리고 왔는지 그는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먹었던 그 음식을 추천했고, 우리는 나란히 창가에 앉아서 같은 음식을 먹었다. 여전히 맛있었고, 그도 흡족한 표정이었다. 평범한 대화를 나눴고, 평범한 저녁이었다.



세 번째는 친구가 추천한 맛집이라며 그를 데리고 갔다.

그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누구랑 왔냐며 다그쳤기 때문이었고 추억의 장소 아니냐며 비아냥 거리기에 친구 추천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무엇보다 그 음식이 먹고 싶었고, 그는 내 추천과는 다른 음식을 시켰다.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고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따뜻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음식이 식을 틈도 없이 크게 한입 떠서 입안을 가득 채웠다. 입을 다물고 씹고 있는데도 볼 안 가득 차있는 음식 때문인지 씹는 소리가 거슬릴 정도로 크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나는 이곳에서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창가 옆 오른쪽 자리. 시간만 흘렀을 뿐 같은 자리에 변함없이 앉아있는 건 나였고, 똑같은 표정으로 음식을 먹고 있는 것도 나였다. 며칠이나 머릿속에서 맴돌아 꼭 먹어야 했던 입안의 음식은 내가 기대한 맛이 아니었고, 레시피가 바뀐 건지 내 입맛이 바뀐 건지 씹으면 씹을수록 더 알 수가 없어졌다. 그는 뭐, 먹을만하네,라고 했고 나는 더 이상 먹을만하지 않았다.



시간이 충분히 흐르면 기억도 같이 바래질까? 이미 존재하는 기억을 새로운 기억으로 완벽하게 덮을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니. 어떤 순간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너무도 깊이 새겨져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 진하게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한다. 떨쳐내려고 해도, 이젠 잊은 듯해도 문득문득 찾아오는 길고양이들 같이.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음식을 매번 시키며 기억을 덧칠해봐도 나는 내가 변하지 않았다고 단정 지을 수가 없었다. 비록 내 옆의 그 사람들은 매번 달랐고, 매번 다른 음식을 시켰고, 매번 다른 리액션을 했다 하더라도. 



변한 건 내 입맛,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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