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타투보다 피어싱이 좋았다.
금속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귀를 뚫기만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각종 염증에 시달리곤 했다. 은이나 금이나, 무엇을 껴도 귀는 붓고 고름이 나고, 때때론 막히지 말라고 끼어놓은 귀걸이가 딱지가 얹고 아물어가는 살 속에 파묻혀 박혀버린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뚫어버린 귀를 막아버리고 싶진 않았다.
그러다 발견한 어느 글에서 피어싱용 귀걸이의 재질이 수술용 의료기구에 쓰이는 서지컬 스틸이라는 재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보편적으로 알레르기가 적은 금속인 데다 녹이 잘 슬지 않고 물에 강하다는 설명글에 이 재질 마저 내 귀에서 알레르기가 일어나면 귀를 막아버려야겠단 생각으로 몇 개 구입을 했다.
아팠다.
알레르기 때문에 귀가 붓고 고름이 나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피어싱에 쓰이는 귀걸이들은 일반 귀걸이들보다 두꺼운 편이어서 내 작은 구멍이 넓혀지느라 아팠다.
그래도 괜찮았다.
귀가 아파도 더 이상 염증과 고름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어서 괜찮았다. 귀가 아파도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고 내 귀는 더 단단해져서 괜찮았다.
그 일련의 과정이 썩 맘에 들었는지 피어싱으로 귀의 뚫린 구멍이 얼마나 커질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평범한 여자애들처럼 예쁜 귀걸이를 하는 대신 깔때기 같은 쇳덩어리를 귀에 꼽고 구멍을 넓혀가며 아픔을 자초하는 나를 너는 특이하지만 나 답다며 괜찮아했다. 곧 연필도 들어가겠다며 넓어지는 구멍을 같이 보며 큭큭 대곤 했다.
"봐, 이거 내가 오늘 내손으로 뚫었어."
어느 날 뜬금없이, 왼쪽 귓바퀴 끄트머리를 바늘로 뚫었다. 귀를 넓히는 게 무척이나 아팠어서, 귀를 뚫는 건 별로 안 아프겠지, 하는 생각에서 충동적으로 거울을 보며 뚫어버렸다. 막상 바늘로 찔렀을 때는 아픔보다는 무서움이 더 앞서서 멈칫거리는 바람에 귀가 띵띵 부어버려 박혀있는 바늘을 통과시키는 게 생각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띵띵 부어버린 빨간 귀를 손가락으로 당긴 채로 밝게 웃으며 얘기하는 나를 보고 너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웃은 뒤, 염증이 나지 않게 조심하라며 약을 발라줬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을까.
나는 홀린 듯이 피어싱 샵에 앉아있다.
"여기, 귓바퀴 끄트머리 쪽에 나있는 귀걸이 구멍 있죠?거기 밑으로 이만큼 떨어져서 하나 뚫어주세요."
"참나, 이 나이 먹어서 갑자기 왜 귀를 뚫으려고 그래? 애도 아니고."
옆에 있던 동생이 놀리듯 비아냥 거렸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이쯤이면 될까요?"
머리를 높게 올려 묶은 피어싱 샵 점원이 거울에 비친 나와 귀를 같이 번갈아 보면서 들고 있는 펜으로 위치를 가늠하고 뚫을 자리를 표시할 준비를 했다.
"네, 그쯤이면 될 거 같아요. 그리고 피어싱은 먼저 뚫려있는 귀걸이 구멍과 이어지는 모양이면 좋겠는데... 이 긴 피어싱 바를 구부려서 디귿자로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그 날은 너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은 날이었다. 그것도 네 입에서 직접. 우리 모두가 아는 사람이기에 네가 직접 얘기를 한 거겠지.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나는 아팠고, 고통이 필요했다.
"당분간 술, 담배 하시면 안 돼요. 안 아물어요."
주의사항을 잘 듣고 대답까지 하고 나와선 근처 술집으로 향했다. 나는 어서 이 아픔이 아물어서 단단해지기를 바라는 걸까, 아물지 않고 계속 아파서 너를 계속 떠올리기를 바라는 걸까.
지금은 귀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넓혀놨던 귓볼 피어싱도 빼버렸고, 그때 피어싱 샵 점원에게 부탁해서 만들어놓은 디귿자 모양의 피어싱도 빼버렸다.
그래도 가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을 때면 디귿자 피어싱을 꺼내 뚫어놓은 귀에 꽂아보곤 한다. 어쩔 땐 쉽게 들어가기도, 어쩔 땐 뒤가 살짝 막혀서 한참을 문질 문질 해야 하기도 하지만 가끔, 그렇게 억지로라도 막힌 곳을 뚫어버리려 애쓴다.
네가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나도 뚫려버린 내 마음이 아물기를 바라면서도 계속 뚫렸던 자리를 확인하면서 막히지 않기를 바란다. 네가 내 마음속에서 흔적 없이 아물기를 바라지 않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문질 대다 피어싱 끄트머리가 귀 뒷부분으로 뚫려 나와 대고 있던 손가락 끝에 닿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살짝 나와버렸다.
아직 안 막혔구나.
다행이다.
아무도 안 듣길 바라면서
미련스럽게도, 나지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