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가 좋았다.
묵직한 바디감이 좋았고, 필름을 넣고 감는 기분이 좋았고, 내가 잘 찍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좋았다. 빈티지 시장을 헤매고 중고 카메라 만을 판다는 골목길들을 방문해 가며 그렇게 나의 첫 필름 카메라를 살 수 있었다.
첫 롤은 엉망이었다.
카메라에 대한 기본 지식은 아무리 배웠다 한들 실전보다는 못한 것이었고 핸드폰으로만 보던 넓은 화면 속 세상은 카메라 뷰파인더 앞에서만 유독 작고 좁아 보이기만 했다.
엄마를 찍고, 아빠를 찍고, 친구들을 찍었다.
연습 중이라는 명목으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달라고 하고 찍기도 했고, 커플인 친구들의 달달한 모습들을 멀리서 찍고는 선물이라며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난 너를 찍는 게 좋았다.
본인은 사진발이 안 받는다며 손사래 치며 쑥스러워하던 네가 세상 제일 사랑스러웠고 아, 안돼, 움직이지 마, 라며 카메라를 들이대면 웃음을 꾹 참고 포즈를 취하던 네가 귀여웠다.
무거운 카메라를 한 손으로 멀찍이 들고 렌즈를 바라보며 대충 감으로 위치를 잡아 셀카를 찍은 우리의 얼굴은 반은 날아가고 초점도 엉망이었지만 그런 결과물을 사진관에서 찾아오는 재미도 있었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필름 롤 끄뜨머리쯤에서 찍은 듯한 사진 한 장.
여러 가지의 모습들이 한 장의 사진에 겹쳐 현상이 되었다. 아마도 찍을 때마다 필름을 돌리고 찍는 수동 필름 카메라의 특성상 다 돌아간 필름이 돌아가지 않고 그 위에 몇 번이고 찍힌 모습들이 한 장에 현상되어 나와버린 것 같았다. 비록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를 닮은 유령들이 사진 주변에 득실 거리며 지켜보는 것 같다며 좋아했다.
그 날은 바람이 좀 불었지만 날이 맑아서 근처 호숫가 앞에 크고 이상하게 휘어버린 나무 근처에서 너와 사진을 찍는 중이었는데 달깍 거리며 필름이 다 감긴 소리가 났다. 불현듯, 유령이 득실 거리던 그 마지막 사진 한 장이 생각났다. 나는 뷰파인더 속의 너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움직여보라고 얘길 하고는, 같은 장소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너의 사진을 몇 번 더 찍었다.
그리고 예상했듯이, 휘어버린 나무 주변으로 네가 여러 번 찍혀 현상이 됐다. 너는 마치 사진 속에서 걸어 다니는 것처럼, 혹은 프레임 밖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흐릿해서 유령 같아, 봐봐 여기 있는 나는 발이 사라져 있고, 여기서는 손이 희미하잖아."
"에이, 흐릿하니까 훨씬 잘생겨 보이는데 뭐."
내가 미소를 지으며 던지는 농담에 너는 인정한다며 크게 웃어댔고 나는 내 앞의 실재하는 너를 내 손으로 증명하려는 듯이 너의 허리를 꽉 감싸고 같이 웃어버렸다.
사라지지 마, 사라지지 마.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