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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동물처럼 변신? 변신!

by 애니마리아


‘할머니, 할아버지!’

‘그래, 우리 똥강아지들, 왔어?’


오랜만에 보는 자식을 보고는 나오지 않는 말. 자식들에게는 무뚝뚝했던 이전 세대의 어르신들도 손주들을 대하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워낙 활달하면서도 시끌벅적했다. 시어머님은 특히 왈가닥 손녀를 가리켜 특유의 애칭으로 부르셨다.

“아이고, 이 밉상이야. 밉상이야.” 하고 말이다. 귀여울 때도 장난이 심할 때도 고집을 부릴 때도, 한 번도 아니고 꼭 두 번씩 추임새를 넣어서 부르시곤 했다. 처음에는 밉다는 말의 사투리인가, 못난이라는 말인가 나름 어원을 추측해 보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익숙한 말이 되어 그리 궁금하지 않게 되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사랑이 깃든 말이라는 것은 분명하니까.


나도 할머니가 되면 손주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성격이든 그저 ‘허허’하고 웃으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부르게 될까 상상해 본다. 아이는 존재만으로 사랑스럽고 고마운 존재임을 알면서도 때로는 이 말을 잊을 정도로 힘겨울 때가 있었다. 함부로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었고 내 마음이나 노력을 몰라주는 것 같아 괜히 서운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말라’는 육아 교육서(유은정, 21세기 북스, 2016)가 떠오르며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했으나 정답은 없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나와는 다른 말투, 다른 태도나 대응 방식에 깜짝 놀랄 때가 점점 많아졌다. 아이가 어릴 때는 그나마 ‘이렇게 하는 게 좋아’, ‘예쁜 말 해야지’하고 스스럼없는 훈육을 할 수 있었는데. 빨라진 사춘기, 생각보다 길어진 사춘기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때 의심 가는 말이 있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제일 곱다고 한다'는 속담. 아무리 고슴도치라도 제 자식이 마냥 예쁘지만은 않았을 거라며 한탄하면서.


다른 한편, 고슴도치 입장에서 자식의 가시가 많을수록 미운 게 아니라 더 예뻐 보이고 자랑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가시가 많고 날카로울수록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하기에 더욱 효과적일 테니까. 게다가 가시는 체온을 유지하는 역할 및 감각 기관의 역할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단 가족끼리는 아무리 부모 자식 사이라도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 상처를 입히고 고통을 느끼는 역효과가 나기도 할 것이다.

무한적으로 가까이하기에는 무리인 관계를 빗대기 위해 하고많은 동물 중에 고슴도치가 선택되었을까. 조상들의 눈썰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성인 자식이 부모에게 의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캥거루족’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캥거루 새끼는 육아낭에서 4, 5개월 생활하다가 스스로 나와 독립적인 생활을 한다. 인간도 결국은 자녀를 잘 독립시키기 위해 준비시키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 말에 십분 동의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돌이 지날 때까지 품에서 키운 정의 힘은 유난히 큰 것 같다. 아들도, 딸도 나의 손길이 점점 필요 없어지지만 막상 그들이 독립하면 늘 그들이 보고 싶어 지기 때문이겠지.


아이들과 나의 관계를 겪고 머지않은 미래를 그려보며 나 또한 부모님, 시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때로는 연락하는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부모님은 늘 말씀하신다. 전화 주어서 고맙다고. 그 말씀에 민망하기도 하고 순간이나마 의무감으로 대했던 나의 마음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어릴 적 엄마가 가끔 하시던 말씀, ‘너도 나중에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 이 말이 단순히 한탄이나 감정의 발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정말 자식을 낳아 키워보지 않으면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임을. 인간의 독립은 자식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식을 진정으로 떠나보내고 축복하며 그들이 나를 가끔 기억해 주면 나 또한 감사해야 하는 부모의 독립이기도 함을.


자식이 없어도 인간으로서 잘 살 수는 있다. 착하게 성실하게 나름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다. 하지만 자식을 낳고 키우는 은총 속에서 나를 알고 부모를 이해하고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온갖 감정을 더 오래, 많이 간직할 수 있는 것 같다. 고슴도치 가까이 있으되 서로 찔리지 않을 만큼 거리를 유지하기도 하고 여우처럼 애교를 부리고 영악하게 굴기도 한다. 혹은 고양이처럼 자기 영역을 지키고 떨어져 있다가 어느새 다가와 그루밍을 해주기도 하는 사이로. 때와 환경에 따라 변신하는 카멜레온처럼 살아가는 우리, 그저 동물처럼 순리대로 잘 어울리며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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