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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그리운 마음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by 애니마리아


10월 제출한 서평 원고 과제 일부

작가: 최은영

책 제목: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출판사: 문학동네


‘이 책을 읽고 자신도 몰랐던 마음을 발견하는 경험을 하면 좋겠어요.’([커버스토리] 최은영, 빛이 있는 곳을 향한 회복의 목소리, <월간 채널예스> 2023년 9월 호 인터뷰)


작가 최은영은 1984년 광명에서 태어나 2013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밝은 밤』이 있다. 문학동네 젊은 작가 상, 허균문학 작가 상, 김준성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 작가 상, 한국일보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작가의 말’에서 언급했듯 작가는 ‘사랑을 하는 일에도 받는 일에도 재주가 없지만 언제나 사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쓰고 내놓으며 살아가고 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각기 다른 이야기가 총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2023년에 한꺼번에 나온 소설이 아니라 이전 5년간 지면에 발표한 원고를 묶어냈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서정적 문체가 편안하다. 3인칭과 1인칭을 오가거나 독자를 ‘당신’이라 칭하며 이인칭 시점(「몫」 p.49)으로 독자를 소설 속으로 한껏 끌어당기는 단편을 접하는 색다름도 있다.



작품을 읽다 보면 독자는 거의 모든 단편에 묘사되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인물 간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도 실제 사건이나 사회적 이슈가 곳곳에서 배경과 화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령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희원과 영문과 강사를 중심으로 두 사람의 인연이 펼쳐지면서도 ‘용산 참사’를 암시하는 사건이 펼쳐진다. 「몫」에는 대학 편집부원인 정윤, 해진, 해영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모 여학교 축제 때 일어난 타 학교 남학생들의 테러, 폭행, 기지촌 여성, 집회 등의 갈등이 있다.‘다희’와 ‘그녀’가 나오는 「일 년」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가, 「답신」에서는 자매의 갈등, 원조 교제가 「파종」과 「이모에게」,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에는 ‘돌봄’이 여러 주체와 객체로 다뤄진다.



작품 속 통로는 각각 다르지만 자연스럽게 흐르는 의식과 대화 속에서 띵하고 머리를 맞는 듯한 울림도 숨어있다. ‘더 가보고 싶었다’(p.44)는 강사의 메모에서 ‘그녀의 언어가 나의 마음을 설명해 주는 경험을 했다’며 홀로 응답하는 독백에서 공감을 느끼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읽고 쓰는 것만으로 몫을 다했다고 부채감을 털어버리는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p.79)'고 말하는 희영의 말에서는 글 쓰는 사람의 고뇌는 세상을 향한 작가의 고뇌가 느껴진다. 마치 생각 없이 지나가다가 거미줄에 걸리는 벌레가 된 듯, 이들의 대사는 필자에게 ‘너도 부끄럽지 않니?’라고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그래서 문득 우울해지고 슬퍼지는 찰나에 ‘부끄러운 건 귀엽다’(p.319)며 할머니에게 말하는 손자 마이클의 위로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독자는 경험에 따라 자신의 비겁함을 느끼기도 하고 비슷한 과거를 떠올리기도 하며 생각에 잠기기도 할 것이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피하지만 그리워하는 모습은 인생에서 흔히 겪는 모순 섞인 진실처럼 보인다. 앞서 작가가 인터뷰에서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감정을 발견하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독자는 낯선 언어를 접하기도 한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p115)


「일 년」에서 호의를 거절하는 다희에 대해 그녀가 느낀 당황스러움, 서운함에 상처받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관계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그 뜻이 아무리 고귀하고 좋아도 상대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고 단순히 일방적인 친절은 부담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깨달음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이나 이별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과거의 아픔을 돌아보면 슬프지만 희미하게나마 저 멀리 깜박이는 빛을 보고 다시 묵묵히 나아가는 화자처럼 독자도 누군가를, 무언가를 떠올리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7편 모두 여성 화자 중심이기에 일부 독자는 여성만의 이야기라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작품은 가족, 친구 관계 및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 사유와 공감의 기회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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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저자최은영출판문학동네발매 2023.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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