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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는 밤 남아있는 이들과...

by 애니마리아


크리스마스이브를 넘겼다. 성탄절 우리는 애도 중이다. 예수님이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나신 날.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애도 중이다. 포항의 한 장례식장에서.


새벽 3시 23분. 이리 눕고 저리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허리가 아파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몸을 뒤척여보지만 잠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아무리 낯선 곳에서 자는 잠이 힘들다지만 새벽 한 시가 다 돼가도록 잠이 오지 않다니. 아, 잠들고 싶다.



3시 45분. 화장실을 다녀와야겠다. 목이 마르다. 하지만 주변에 누운 남아있는 이들이 깰까 봐 잠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생각에 잠긴다. 억지로라도 자야 할 텐데. 좀 더 잠을 청해보자. 몸을 돌리다가 옆에 누운 친척을 깨울까 봐 조심스러워진다. 다시 반대로 눕다가 벽을 이루는 미닫이문을 치고 말았다. '쿵!' 의도하지 않은 둔탁한 충돌 소리가 났지만 날카로운 아픔을 삼킬 수밖에.



3시 50분. 아무래도 안 되겠다. 어둠 속에 희미한 빛을 의지하여 가방을 찾아본다. 여기저기 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 남아있는 자들의 고뇌와 슬픔이 느껴진다. 각자 불편하게 잠을 청하는 자세에서 애환의 숨이 흘러나온다. 나는 가방을 찾아서 왔다 갔다 하는데 어둠 속에서 의자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목격한다. 상장(喪章)을 팔에 두른 사람과 하얀 머리핀을 꽂은 사람. 고인의 자녀들. 아직은 너무 젊은 어머니. 그녀를 잃은 지 이틀도 되지 않은 더 젊은 두 자녀. 둘은 누구보다 가까운 혈연의 끈이 있지만 서로 다른 방향, 다른 곳을 응시하며 인간으로서 최소한으로 누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왜 그렇게 불편함을 감수하냐고, 어서 잠을 청해보라는 말도 못 한 채 나는 그 자리를 떠난다.



4시 47분. 잠을 다시 청하기는 글렀다. 보이지는 않지만 무거운 기운을 느낀다. 혹시 몰라 챙겨간 노트북과 책을 펴고 완성하지 못한 글을 다듬는다. 문득 누군가 옆을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렇게 몇 번을 분향소 밖 복도를 거니는 사람을 굳이 쳐다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스스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주 가운데 한 사람. 조용히 복도를 따라 걷는 그분을 느끼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잠이 오지 않아도 억지로라도 쉬어야 힘을 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상투어를 내뱉는 게 의미가 있을까. 온종일 조문객과 절을 나누고 애도하고 밤을 지새운 사람을 위해 나는 그저 모르는 척, 멀리서 함께 기다려줄 뿐이다. 어느새인가 상주의 발걸음과 울음이 뒤섞인다. 저벅저벅 소리는 먹먹한 흐느낌을 가릴 수 없다. 작고 여린 몸에서 큰 파도가 쏟아져 나온다.



5시 13분. 그 흐느낌을 이해한다. 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치르며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눈물에 어쩔 줄 모른 적이 있다. 누가 나를 찌른 것도 아닌데 신체의 말미에서 시작하는 저림과 답답한 심정, 밤을 함께 한 문상객들 사이 어둠 속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는 탈출의 몸짓을. 나도 정확히 무엇 때문에 눈물이 나는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순간이 있었다. 절대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그 결심이 무색하게도 쓰나미처럼 눈물을 흘렸던 그 해를 기억한다.



고인의 생전 모습이 떠오른다. 오랜 세월 아프셨지만 볼 때마다 미소를 잃지 않으셨던, 그렇다고 억지웃음으로 사람을 대하시지는 않았던 소녀 같은 분. 그분을 잘 모르지만 이튿날 화장터로, 장지로 이동하며 모든 유교식 장례를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신 날 우리는 한 사람의 생명을 다시 흙으로 보내드렸다. 우리는 누구나 죽을 것인데 왜 슬퍼하는가. 죽을 때가 일정하게 정해진 것도 아닌데 왜 안타까워하는가. 찬 바람에 몸이 굳어가고 맨땅에 계속 절을 하면서 지쳐갈 무렵 동행한 친척이 말을 한다.



"따님이 아이를 낳게 되면 친정어머니(고인)가 많이 그리울 텐데......"



고인의 영혼이 있어 남아 있는 가족 주위를 맴돌며 그들을 그리워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 단순히 새의 날갯짓으로, 촛불의 펄럭거림으로 마음을 전하지 못할 터인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피곤함과 무력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늦어진 귀갓길에 짜증이 밀려왔다. 그런 나를 보고 안드레아가 말했다.



"고인을 위해, 남아있는 이들을 위해 길을 나섰지만 사실은 우리 자신을 위해 떠난 거야."



장례는 우울하고 슬픈 의식만은 아니다. 특별한 만남을 통해 우리는 자신과 가족, 삶을 반추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들이 있어 우리도 앞으로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할 수 있다. 우리가 결코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다. 그 자체만으로 우리는 우리의 작은 애도로 삶이라는 큰 선물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슬프지만 감사하다. 외롭지만 든든하다. 끝이 있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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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바람 쐬러 나온 포항의 겨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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