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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랑의 길

<이루어지소서>를 읽으며

by 애니마리아


작년 안드레아가 퇴근한 어느 날 내게 장편의 고전 못지않은 책 한 권을 건넸다.



<이루어지소서>-남양성모성지 이야기(이상각 신부님 지음, 2024)



남편의 직장 행사로 봉사를 함께 떠난 자리에서 뵙게 된 동료분의 선물이었다. 낯을 가리는 나를 위해 밝은 웃음과 소소한 대화로 나를 챙겨주시던 그분의 배려를 잊을 수가 없다. 나를 'J 씨'라 부르며 마치 친한 언니처럼 다가와 주어 편안했는데 이후로도 안드레아를 통해 소식을 전해왔다. 내가 천주교 신자인 것을 어찌 아셨는지 그분은 '남양성모성지'에 가셔서 일부러 이 책을 구입하시고는 신부님의 친필 사인까지 받으셨다. 오로지 나와 안드레아를 위해. 비록 안드레아의 세례명을 '요셉'이라고 잘못 전달하는 실수를 하긴 했지만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굳이 관심을 표할 필요 없는 관계에서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베푼 배려와 관심이기에.



병렬 독서를 심하게 하는 나로서는 당시 양가감정이 들긴 했다. 장기 프로젝트처럼 조금씩 천천히 읽고 있는 고전과 계획된 독서 목록, 충동적으로 구해 읽는 책, 교과서, 참고서가 늘 쌓여있기 때문이다. 500쪽이 훌쩍 넘는 양에도 압도되었고 무엇보다 내가 이런 특별한 책을 읽을 깜냥이 되나 부끄럽기도 했다.



쌓아놓고 잊어버리는 책으로 두고 싶지는 않았다. 읽다가 멈출지언정 소중한 또 하나의 인연을 주신 나의 신께 철부지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완독의 부담을 잠시 내려놓고 기도하듯 조금씩 읽고 묵상하려 한다. 여러 서문과 초반을 읽으며 알게 된 이야기에 검색하며 알게 된 내용, 기구한 사연이 벌써 한 보따리이다. 정말 성지순례를 떠나는 길처럼 길고 험난하며 지난할 수도 있는 묵상의 길, 십자가의 길이다.



2025년 새해를 맞이하여 첫 장을 넘기게 되어 기쁘다. 그분을 생각하며 그분을 통해 무녀진 나의 신앙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바라보며 한 발씩 한 발씩 이 책을 밟아가려 한다. 걷다가 쉬어도, 잠시 길을 잃어도 걱정하지 않으려 한다. 시작조차 버거워했던 내 마음을 알았다는 듯이 다가오는 구절, 내 손을 잡아주는 듯하다.



그럼에도 성지에서는 길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도, 또 그 여러 갈래의 길 가운데 어느 길로 갈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어느 길로 들어서더라도 기도로 이어지게 되어 있으며, 우리의 자비로우신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우리들을 당신의 아들 예수님께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30~31쪽/<이루어지소서>


이 책을 받았을 때 안드레아는 남양성모성지에 가 보자고 했다. 당시 실천하지 못했지만 해를 넘기고 나는 다시 소망의 촛불에 빛을 키우고 있다. 외로운 사랑의 길을 30년 넘게 걸어오신 이상각 신부님의 이야기를 통해 성지순례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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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지소서저자이상각출판한국교회사연구소발매 202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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