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심장>을 따라가며
<HEART OF DARNESS>(1899) BY JOSEPH CONRAD(1857~1924)를 발췌독하고 있다. 영국 소설의 대표 목록이기도 하고 예습 겸 간간이 읽고 있다. 19세기 작품이니 읽기 쉽지는 않겠다 싶었는데 역시나 처음부터 이해가 잘되지 않아 원서와 번역본을 오가며 분석하고 있다. 가볍게 독서하고자 했으나 나도 모르게 심화 분석에 빠져들고 있다. 단순히 집어 든 책이 아니라 바로 포기할 수도 없다. 1학기 과목에 나오는 소설이라 어차피 다시 만나야 하기에...
1장에서 배와 주변의 분위기가 한층 무겁게 묘사되는 문구로 시작해서인지 이야기의 흐름이 잘 예상되지 않는다. 그래서 읽고 또 읽다 보니 초반부터 지치는 느낌이다.
The Nellie, a crusing yawl, swung to her anchor without a flutter of the sails, and was at rest. The flood had made, the wind was nearly calm, and being bound down the river, the only thing for it was to come to and wait for the turn of the tide.
<Heart of the Darkness> p.5
눈길을 사로잡는 독특한 문구나 획기적인 사건을 기대하는 나를 인식하게 된다. 단맛, 매운맛, 짠맛과 같은 자극적인 미감을 기대하는 습관은 비단 음식만 대상으로 하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소설이니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지점에 조금이라도 닿기 위해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겠지.
나는 아주 옛날, 로마인들이 처음 이곳에 왔던 1900년 전을 생각하고 있었네. 불과 며칠 전 일인 것만 같군...... 그 후로 이 강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지. 빛이 아니라 기사들 아니냐고? ●
<어둠의 심장> 13쪽
맨 끝 물음표 다음의 ● 표시는 번역본에 그대로 표기된 주석 표시이다. 대개 숫자 등으로 표기되는 각주 부호와는 달리 동그라미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보다 이곳에 달린 주석 내용에 눈길이 갔다. 번역을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부분을 두고 고민한 번역가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주석 내용은 이렇다.
'빛(Light)', '기사들(Knights)'로 각운을 맞춘 것이다.(13쪽 주석)
주석이 없이 우리말로만 보았다면 많은 한국의 독자들은 이 문장의 묘미나 작가의 재치를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특히 영어에 익숙하지 않다면 바로 각운의 효과를 느끼기 힘들 것이다. 반대로 우리말의 각운이나 두운을 맞춘 시가 번역을 거쳐서는 전혀 그 맛이 안 날 수도 있음은 당연하다. 원서로 읽었다면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거나 이렇다 할 설명 없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 이래서 '번역은 반역이다'란 말이 나온 것일까. 도움을 주고자 한 번역이 이해도는 도울지언정 원문의 참맛이나 예술성이 반감되는 경우도 있어 참 어렵다는 생각도 한다.
번역을, 혹은 원문을 예상하며 읽다 보니 옆길로 새는 듯한 부작용이 느껴질 때가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작품이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런저런 조사를 하느라 독서의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거나 쉽게 지칠 때도 있으니. 이런 면을 보면 독서는 건강한 식단을 바탕으로 기초대사량을 키워야 하는 작업과 유사한 듯하다. 평소 독서 내공이 잘 자리 잡혀 있는 사람은 어렵고 심오한 책을 만나도 그에 맞게 독서를 즐길 수 있을 텐데.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어렵지 않아도 번역의 시선으로 보거나 한곳에 집중해 파고드는 버릇이 생긴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도 든다.